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 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 시집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

.......................................................

만해 한용운은 한국 근대사가 내포하고 있던 모순과 문제점을 첨예하게 파악하고 실천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한 민족의 선각자였다. 그리고 독립투사이자 빼어난 사상가였다. 특히 일제 패망 직전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서 ‘심우장’의 냉돌위에 스러져 순국하기까지 보여준 정신의 일관성과 지절은 참으로 귀한 민족적 사표가 아닐 수 없다. 광복을 불과 1년 남긴 1944년 6월29일, 66세의 나이였다. 순국 75주년이자 3·1운동 100주년인 뜻 깊은 올해, 여러 곳에서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학술제와 예술제 등 추모행사가 지난 주 열렸다.

지난 토요일 백범기념관에서는 (사)이상화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우국시인의 민족애와 시세계’란 주제의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독립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윤동주 네 분의 애국정신과 문학을 조명하는 행사였다. 이들은 모두 조국의 해방을 1~2년 앞두고 순국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의 기회도 가질 겸 모처럼 대구의 문인들이 대거 상경한다고 해서 행사에 합류했다. 이상규 교수의 기조발표에 이어 송희복 교수의 주제발표 ‘한용운의 옥중시와 자유 독립사상’을 흥미롭게 들었다.

송 교수는 만해 한용운에 대한 수많은 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그가 3·1운동의 첫머리에 서서 ‘기획하고 모의하고 주도하고 실행하였다’는 이야기가 별로 나오지 않음을 무척 아쉬워했다. ‘기미년 거사의 실마리는 1918년 11월말에 한용운과 최린의 만남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흥미로운 주제발표가 계속되었고 나로서는 귀한 공부의 시간이었다. 한용운은 3·1운동 직후 체포되어 3년의 옥고를 겪고 석방되었다. 가장 옥중 체험이 반영되었으리라 짐작되는 시편이 바로 ‘당신을 보았습니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3·1운동 전후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에서 당신은 갔다는 말은 국권상실을 의미하며, 정조를 유린하고 능욕하려드는 장군은 일본 제국주의이다. 항거의 격분은 3·1운동을 말한다. 이 격분은 제 스스로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슬픔이 된다. 그러나 결코 무력한 슬픔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지닌 슬픔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