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나라

발행일 2019-07-07 16:17:3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소서가 지났다. 바람결에 작은 여름의 시작을 느낀다. 아침은 서늘한 기운이 있어 본격적인 낮 더위를 떠올리기보다 그저 상쾌하다. 녹음이 짙어가는 자연에 눈을 씻어 잠시나마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비 갠 하늘은 하얀 구름을 거느려 한결 여유롭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수은주에 눈길을 보내며 오늘 하루도 더위를 잘 이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일과를 마치면 늘 궁금하다. 커피 빛이 감도는 땅에서 앙증맞게 영글어가는 참외가, 작은 줄기에 매달려 몸피를 불려가던 수박이 얼마나 자랐을까? 하고. 발길은 절로 어둑해진 그곳으로 향하면 태양 빛에 감응하는 등불 사이로 어느새 주먹만 해진 수박이 엉덩이를 드러내며 반가운 얼굴로 웃는다. 낮 동안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가 밤이면 가끔 찾는 주인의 발소리에 귀를 쫑긋이 세우고 있었나 보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네들을 보면 인간의 자식만 애정으로 자라는 것만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 찌꺼기를 거름으로 준 것이 이제야 땅에 힘을 더하는지, 아무렇게 부려둔 채소 씨앗과 과일들이 저마다 자라나서 제 몫을 다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라니. 그것을 보노라면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때 가슴 뻐근하던 그때 그 느낌이 살아나는 것 같다.

출근 준비를 하며 켜 둔 영상에선 ‘아이나라’라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남자 배우가 처음으로 아이 돌보기를 해보고서 육아의 힘듦을 알리는 이야기였다. 한 방송에서 새 프로그램을 시작한 모양이다. 사정이 생겨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을 책임질 수 없는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 돌보미의 현장 체험을 해보고 그 실상과 고충을 공유하여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보고자 하는 뜻이 담긴 듯하다. 요즘 인기 있는 남자 세 사람이 가사 도우미로 변신해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설정으로 농구 선수 출신의 키가 큰 남자 연예인, 개그맨, 또 단정하게 생긴 영화배우가 함께 방송에 참여하였다.

첫 돌봄 서비스를 끝까지 완수한 남자 배우는 황혼 육아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신했다. 맡은 아이는 40개월이었지만, 나의 조카처럼 붙임성이 뛰어나고 먹성이 좋아 또래보다 좋은 체격을 가졌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쉽지 않은 육아의 고충을 그대로 경험하며 허덕인다. 숨 가쁜 등원에 이어 하원까지 마치고 키즈 카페 방문하기까지 한순간도 눈을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혹시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며 전력을 다하는 그를 보며 우리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가 다르게 흰머리가 늘어가시던 친정아버지, 어머니가 떠올라 순간 가슴 먹먹하였다.

신나게 놀고 돌아온 아이 목욕을 도와주며 그는 아이와 더욱 가까워진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연 아이는 삼촌이라 부르며 그를 따르고 좋아한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육아에 남자아이의 돌보미, 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얼마나 더디게 가는 시간이었으랴. 드디어 돌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각, 아이는 작별을 거부하며 울먹인다. 그 사이 정이 담뿍 들어버린 남자 배우도 몇 번이나 애틋한 인사를 나누며 뽀뽀까지 받아 가며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아이와 어렵사리 작별한다. 아 ~아 앙! 울음보 터뜨리는 아이를 뒤로하며 첫 번째 돌봄 서비스를 마무리하는 그 어깨를 보면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뿌듯함은 오래 남을 것 같은 그 장면이 나의 뇌리에 새겨졌다.

숭고한 육아를 현실로 인해 제각각으로 해오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연예인이 육아를 직접 경험하며 녹록지만은 않은 그 어려움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한 번쯤 생각하게 할 것 같은 아이를 위한 나라‘라는 프로그램은 기대가 된다.

일전에 의대 시절 은사님 자제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자그만 아이였던 그가 어느새 장성하여 학계의 동료가 되어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야기 끝에 “아버님께선 정말 자상하셨지요?” 물었다. 그의 답은 “아버지는 가부장의 대표이셨지요.” 언제나 일에 바쁜 어머니를 불러대신단다. 달려가서 옆에 서면“ 물 좀 가져달라.”고. 그 어머니는 “불러서 물 가려달라고 하시면 달려왔다가 다시 물 가지러 가야 하니, 한 번에 할 수 있게 아예 ”물!“이라고 하세요.” 그 장면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장가드는 날이 되자 은사님께서 아들을 불러 앉혀서 하신 말씀, ” 너는 나처럼 가부장으로 살면 안 된다. 요즘 가장처럼 자식에게 자상하게 해야 해. 가정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지 않은가.

세상 모든 아버지께 청합니다. 가부장 아닌 자상한 가장이 되어 ‘아이를 위한 나라’를 잘 만들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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