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짓기’를 넘어 ‘담장허물기’로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영화 ‘기생충’을 봤다.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는 마음을 갖고서다. 훌륭한 한국사회 연구 텍스트를 읽는 듯했다. 생각거리도 많았다. 여기서는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해 본다.

첫째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관련된다. 영화는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만 다루지 않는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문화적 계급의 문제를 영화는 포착해 그리고 있다.

예컨대 부잣집 박사장네와 그 집에 기생해 살기 시작한 기택 가족은 단지 경제 계급만 다른 것이 아니다. 생활공간과 생활방식과 마시는 술도 모두 다르다. 심지어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까지 다르다는 사실에 영화는 주목한다. 운전기사 기택이 박사장을 살인하게 된 것도 자신한테서 나는 냄새가 그로부터 경멸당해서다. 흔히 문제됐던 경제적 착취나 갑질이 아닌, 냄새에서 촉발된 모멸감이 살인을 불러온 것이다.

영화는 가난한 두집 사이의 갈등과 적대까지 그려내고 있다. 반지하 집의 기택네 가족들은 완전 지하방에 숨어 사는 더 아래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으려 든다.

슬픈 것은 영화가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풍자와 웃음을 섞어 주긴 했지만,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공감이 더 컸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넘기 힘든 장벽이 존재한다. 부촌과 빈민촌, 넓은 평수의 아파트와 작은 평수의 아파트는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 어린 아이들도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친구를 구별해 사귄다. 생활방식, 자녀양육 방식, 취미생활 등도 모두 다르다. 하층민이 그 선을 건너 상층으로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들 사이의 문화적 취향과 가치관 차이가 경제적 계급 차이를 강화하고 계급간 이동을 더 어렵게 한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 전에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잘 설명했다. 그는 계급을 가르는 것이 경제자본만이 아니라는데 주목했다. 예컨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은 사고체계, 문화적 취향, 습성 등에서도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했다. 그는 이를 ‘구별짓기(distinction)’ 현상이라고 했다.

부르디외는 또 각 계급이 갖는 독특한 인지체계와 문화 코드와 취향 등을 가리켜 ‘아비투스(habitus)’라고 불렀다. ‘아비투스’는 짧은 시간에 습득되거나 체화되는 것이 아니며, 특히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아가 ‘아비투스’는 경제적 계급질서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데 기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구별짓기’의 적나라한 실상과 ‘아비투스’의 힘을 보여 주었다. 예컨대 박사장이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에게 '선을 넘지 말 것'을 습관처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선을 지키는 것’은 박사장으로 대표되는 부유층 계급이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 규범이다. 그 ‘선’은 ‘구별짓기’의 봉준호식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기택이 ‘무계획이 가장 완벽한 계획’이라고 말한 것도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다 체념하는 삶에 익숙해진 하층민의 아비투스라고 할 수 있다. ‘냄새’와 ‘무계획 철학’ 등은 ‘아비투스’를 상징하는 봉준호식 해석인 셈이다.

둘째 생각거리는 이 ‘구별짓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구별짓기’와 집단간 배제와 차별은 적절하게 제어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라도 온전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핵심 가치로 삼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도 위협하기 때문이다.

‘구별짓기’를 넘어 ‘소통하며 함께하기’를 추구하는 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실제로 인류 역사는 집요한 ‘구별짓기’의 과정이면서, 또한 치열한 ‘담장허물기’의 여정이기도 했다. ‘구별짓기’를 넘어선 ‘담장허물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긴급한 숙제기도 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영화는 ‘기생’의 방식이 파국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건강하지도 효과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봉준호감독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어렵더라도 ‘기생’이 아닌 ‘상생’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선긋고’ ‘구별짓고’ ‘밀어내는’ 힘은 약화시키면서, ‘담장을 허물고’ ‘소통하며’ ‘끌어안는(포용)’ 힘은 더 키워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함께 살아가는 ‘상생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영화 ‘기생충’이 깐느를 거쳐 와 우리 사회에 던진 고민 주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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