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복은 내 탓이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일본 정부는 반도체 등의 제조에 필요한 3개 첨단 재료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대략 난감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이 그 원인이다. 끊임없이 흘러나온 경제보복설이 마침내 현실화된 셈이다. 치졸한 일본의 민낯이다. 나라가 온통 반일이다. 일본 상품 불매는 물론 의병을 일으킬 일이라고 흥분한다. 구한말 데자뷔다. 감정적인 반일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즉흥적 반일을 넘어서서 항구적 극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신은 굴욕을 참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워 마침내 성공했다. 한신의 고사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크게 이기기 위해서는 작전상 후퇴나 삼십육계도 하나의 선택지다. 양보와 인내, 발상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일본의 무역보복은 구체적 품목까지 적시되어 공공연히 떠돌았다. 유력 언론이 수차례 보도했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의 보복조치 이후에 여성가족부가 화해치유재단의 등기부상 해산 절차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완료한 사실은 일본과 타협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점을 드러낸 징후로 읽힌다. 강제징용건도 외교적으로 해결하라는 시그널이 꾸준히 있었다. 우리 법원에 소송을 낸 지 13년8개월 만에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외교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파국을 맞는 모습은 결코 범상하지 않다. 뭔가 비책을 숨기고 있지 않고는 보여줄 수 없는 여유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유도한 감마저 든다. 우리 정부가 당황해하는 모습도 전략적 행동이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정부가 무능한 탓이다. 내년 총선에서 압승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면 그건 지나친 콤플렉스에서 오는 음모론이다. 그렇게 보기에는 희생과 대가가 너무 크다.

한일 양국의 경색은 일본의 옹색한 대응에 기인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고장난명이다. 일본의 협량함이야 역사를 통해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상대의 정체성을 잘 알면서 계속 당한다면, 당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우리 탓이다. 당하고 난 후 상대를 비난해봐야 약자의 푸념일 뿐이다. 이웃에 약삭빠른 나라가 있고 당한 경험이 많으면, 항상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웃나라에 맞고 터지기 일쑤였다. 징징대며 축축하게 살아왔다. 이젠 우리도 이웃나라에 갑질하는 역사도 한번 만들어봤으면 원이 없겠다. 강자 코스프레도 한번쯤 해보고 싶다. 욕먹고 사과하더라도.

강제징용 건을 보면 아쉬운 점이 남는다. 한일기본조약으로 민간청구권을 상호 합의하고 많든 적든 우리 정부가 돈을 받았다. 국가가 배상금을 일괄 대신 받은 것이므로 국가가 책임지고 피해자에게 배상해주는 방법도 있었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사법적 판단을 자제하고 외교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통치권의 영역이다. 고도의 정치성으로 인해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에 대해 재판거래 또는 사법농단이라는 멍에를 씌워 통치행위를 단죄하려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외교적 해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치킨게임을 벌이는 방법은 바람직한 이성적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외교적 성과인 조약은 국회 비준을 받는 만큼 법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통치행위가 필요한 부분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의 뜨거운 감자다. 위안부 사안은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범죄다. 지난 정부 시절 이 문제를 어렵사리 합의하고 화해치유재단을 설립하였다. 용감한 모험이었다. 그 죄과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일본 국가예산 10억 엔을 받아냈다. 국가예산을 출연한 의미는 일본이 국가차원에서 그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국가예산으로 배상하는 문제에 완강하게 거부해 왔다. 나름 상당한 진전이었고 우리 외교의 성과였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고 일본대사관 코앞에 위안부소녀상을 세운 일은 실익도 없이 일본의 감정만 자극한 감이 있다. 일종의 감정풀이다. 위안부 참상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소녀상 건립이 최선의 응징은 아니다.

통치행위의 부재가 화를 키웠다. 불행한 과거와 정쟁으로 인해 통치행위가 현재 작동불능이다. 통치행위 부재에 대한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통치권자의 통 큰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지혜가 그립다. 내 탓이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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