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니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틈 날 때마다 집에 있는 책장을 쓱 훑어보는 것이다. 몇 년 전 읽었던 책을 보면 새삼 반갑고, 빠르게 책장을 넘기다가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에서 멈추고 다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때론 다음에 읽어야지 하면서 꽂아둔 책을 꺼내드는 기대감도 크다. 그러다가 며칠 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읽지 않은 책이었다. 묘하게 나의 이야기일 것만 같은 제목에 이끌려 책을 꺼내들었다.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한 저자의 결심을 담은 책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제라도 남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기로 했다는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4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였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이젠 가치관까지도 변하고 있나 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난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 대천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온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니?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인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가치관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즐겁게 살겠다는 요즘 2030세대를 대표하는 말이다.

한 종합광고회사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 168억 건의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의 소비 트렌드는 격식 있는 불편한 제품보다 철저하게 나를 편하게 해주는 제품에 지갑을 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이힐이나 핸드백 대신 운동화, 에코백을 언급하는 횟수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했다. 이밖에도 양손이 자유로워 편한 백팩이나 끈 없이 편하게 신는 슬립온, ‘문센룩’(백화점 문화센터 갈 때 부담 없이 입는 옷) 등도 SNS에서 주목받았다.

간단한 차림으로 먹기 편한 가정간편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도 복세편살 트렌드의 결과다. 청소 대행 서비스나 세탁 배달, 강아지 산책 대행 서비스가 등장한 것도 마찬가지다.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 종류들을 봐도 이 같은 트렌드는 짐작할 수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등의 에세이가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대충 살자’는 생각은 요즘 20~30대에서는 유머로 활용될 정도로 유행이다.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 등의 수많은 ‘짤(영상)’이 떠도는 것도 이 말의 묘한 매력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하려 하지 말고, 너무 열심히 살지도 말고 적당하게, 대충 사는 게 더 낫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도 이 같은 트렌드를 보는 마음 한 구석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젊음, 열정, 패기로 대변되는 청춘들이 아닌가. 치열함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책이 품고 있는 속뜻은 아무 생각 없이 아등바등 견디며 살지 않겠다는 말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젊은 세대들이 이야기하는 ‘대충 살자’는 것도 회피하자는 뜻은 아닐 테다. 목표 달성을 위해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대신 나만의 속도로 과정을 즐기며 살자는 또 다른 방향 제시가 아닐까. 저자도 현명한 포기가 필요할 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라고 말하라 했다.

다만 이런 풍조가 확산되는 걸 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인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열심히 살아봤자 뭐하나 라는 자조적인 분위기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내내 취업준비에 매달렸지만 청년 실업은 갈수록 치솟기만 하고, 학연이나 지연 등 인맥을 통한 채용비리가 아직까지 뉴스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나름 열심히 살아보지만 타고난 금수저와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아갈 뿐인데….

이들에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만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진인사대천명을 말하는 필자는 그들에게 혹시 ‘꼰대’가 아닐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