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공화국

발행일 2019-07-14 16:07: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논설위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우리나라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기업인을 불러 회의를 하고 외환 사정을 체크하는 등 허둥대고 있다. 지난 12일 경제 보복 이후 일본서 열린 한·일 첫 전략물자 회의에서 한국 대표는 수모 수준의 홀대를 받았다. 창고 같은 회의실에서 명함 교환은 물론 인사조차 않은 채 냉랭한 태도로 서로 할 말만 하고 끝냈다. 한·일간의 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일본의 경제 보복은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정부 간 갈등에서 초래한 외교 문제다. 정부 간 협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외교 채널은 꽉 막혀 있다. 이런 와중에 외교부 장관은 아프리카 출장을 떠났다.

주변 4개국과의 협력외교는 외교부의 외교정책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4개국 외교는 오간데 없다. 곳곳에서 파열음만 내고 있다. 기강 빠진 외교부는 4개국에게 무시당하고 사대 외교로 질책받고 있다.

국방부도 무능하기 짝이 없다. 북한 목선의 ‘노크 귀순’ 은폐 의혹에 이어 해군 2함대의 허위자수 파문 등 안보 무능을 드러냈다. 장관은 국회에서 6·25가 김일성의 전쟁범죄냐고 묻는 질의에 제대로 답도 못했다. 국민을 불안케 하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기강 빠진 외교·국방부, 국민 불안케 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이 사법 농단으로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태를 빚으면서 법원과 검찰은 조롱 대상으로 전락했다. 경찰은 시위대에게 두드려 맞고도 사법처리조차 제대로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 정부에서 수시로 터져 나오고 있다.

헌법 제69조에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대통령 선서를 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또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와 함께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로 보장했다.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고, 국민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헌법이 보장한 국가의 책무와 국민의 권리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권익 보호’라는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심히 의문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남북 관계에 두고 있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은 도외시한 채 핵 실험과 미사일로 우리 국민을 위협하고 있는 김정은에게 한껏 몸을 낮추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를 과연 믿어야 할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누구의 대통령인가. 지금까지의 문 대통령의 일련의 발언과 행동은 국민들을 심히 불안케 하고 있다. 이는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질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의 역할 방기도 광의의 직무유기다.

-국민 포기는 직무유기, 국익 우선해야

이 시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협정과 관련한 1965년 6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일국교정상화 회담 결과에 대한 국민담화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담화문에서 ‘우리는 이 각박한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지난날의 감정에만 집착해 있을 수는 없다.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감정보다 국익을 우선했다. 이후 한일 청구권 자금을 밑거름 삼아 우리나라는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54년이 지난 이 순간, 우리는 적폐 청산을 외치며 반일로 거꾸로 가고 있다. 그것이 현 사태의 본질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포기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조선 인조와 관료들은 임진왜란을 당하고도 인접 국가의 동향을 읽는데 실패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했다. 임진왜란과 36년 간 일제 강점기의 몸서리 나는 시절을 겪었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나라가 휘청댄다. 우리는 역사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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