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아침논단…잊혀진 이상화 생가

잊혀진 이상화 생가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지에 발표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연 첫 행이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노래한 이 시를 꺼내든 건 예전의 기억이 새삼 떠올라서다.

몇 년 전, 대구의 문화예술관련 기관에서 근무할 때다. 근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의 옛 골목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이상화고택 앞에서 거리연극 이벤트로 재현하는 기획을 한 적이 있었다. ‘옛 골목은 살아있다’는 타이틀로 진행한 문화도시운동이었다. 근대골목이 대구의 새로운 관광코스로 막 떠오르던 시기였다.

서상돈 선생과 이상화를 주인공으로 해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과 3.1만세운동을 연극에 담았다. 매주 현장에서 이 연극을 지켜보면서도 당시에는 필자도 이상화고택이 생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고택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서성로에 시인의 생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끄럽지만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추측해본다. 올해도 여전히 ‘옛 골목은 살아있다’라는 타이틀로 대구의 연극인들을 모셔 당시의 사실을 재현한 연극을 하고 있다. 6월말 전반기 공연을 마치고 7월~8월 혹한기를 지나면 9월부터 다시 상화고택 앞에서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상화 고택을 여전히 생가로 알고 있을 터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관한 어떠한 안내조차 없는 상태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이상화 생가는 서문로 2가 11번지다. 흔히 북성로 돼지국밥 골목으로 알려진 길에서 다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야 볼 수 있다. 이곳은 상화가 태어나서부터 32세 때까지(1900~1932) 살았던 본가였다. 시인은 당시 거처하던 사랑채를 ‘담교장’이라 이름 짓고 항일인사와 전국 문인들의 출입처로 삼았다. 그 후 가세가 기울어 생가를 처분하고 몇차례 이사를 했다가 현재의 고택에서 생의 마지막 4년(1939~1943년)을 보냈다.

당시 약 400여평에 달하던 시인의 생가(서문로 2가 11번지)는 현재 4곳으로 분할되어 있다. 따라서 11-1번지 대문에 붙어있던 ‘이상화 생가터’라는 안내판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이곳에 한옥카페를 연 한 시민에 의해 바로잡혔다. 사람들이 한옥카페를 찾아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그는 생가터 안내판이 잘못된 것을 알고는 대구시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끝에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대구시의 각종 홍보물에는 아직 11-1번지만을 생가로 표기하고 있다. 대구 ‘근대로의 여행’ 관광홍보물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당시 생가 마당을 지키며 소년 이상화에게 시심을 심어준 라일락 고목(수령 200년 추정)에 반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한옥카페 대표는 이제 상화를 연구하는 향토사학자가 되었다. 시인의 삶을 지켜본 라일락 고목을 ‘이상화 나무’로 이름 짓고 ‘담교장’이라는 당호(집이나 건물의 이름)도 재현해 달아두었다. 상화에 관한 각종 문헌과 기록물을 모으고 조사하는 게 일과가 됐다.

상화고택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가는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인 ‘근대로(路)의 여행’ 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이인성고택과 이병철고택~삼성상회 옛터~우현서루 옛터~달성토성을 잇는 코스다. 근대골목 투어와는 별도로 이곳의 이상화 나무와 가까운 계산성당 내에 이인성 나무, 경상감영공원 옆 종로초등학교에 있는 최제우 나무를 연계한 ‘노거수 관광’ 스토리를 엮어내도 괜찮을 듯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대구를 대표하는 시인의 젊음과 수많은 일화를 간직한 곳이고 시심을 가다듬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대구의 근대문학 태동길이라 이름 지어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고택의 그늘에 가려 잊혀져만 가는 이상화 생가가 안타깝다. 고택 앞에는 생가에 대한 안내를, 생가 앞에는 고택에 관한 안내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가능하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당시 항일인사들과 문인들의 모임장소였던 ‘담교장’까지도 복원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대구 근대문학 관광콘텐츠로 잘 활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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