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던진 질문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발행일 2019-07-24 15:16:0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에게 던진 질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중략)/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략)/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일까?

- 시집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2007)

벗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많은 금언들이 있다. 애디슨은 “진정한 행복은 처음엔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서 오지만, 그 다음엔 몇몇 선택된 친구와의 우정과 대화에서 온다.”고 하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당신과 리무진을 함께 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잘 몰랐던 사람의 성격도 다급한 위기 상황 아래서 그 성격이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흔히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지만 꼭 겪어봐야 그 심정을 아는 건 아니다.

어제는 모처럼 친구와 종로에서 만나 둘이서 소주 4병을 마셨다. 예전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과음의 수준이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버렸다. 결국 내 ‘우울증’으로 화제가 옮겨갔고 친구의 ‘실패한 넥타이’ 이야기까지 들었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남의 슬픔을 같이 슬퍼할 줄 알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한도 흥도 울분도 많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며 다른 특별한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 가동이 잘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공감’은 상대방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 심정이 헤아려져 공명이 되는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거나 말의 맞장구만으로 공감능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의 문제이다. 사랑은 뜨거워야 진정성이 확인되지만 우정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대신 우정의 가장 기본이 공감능력인 것만은 확실하다. 공감은 내가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없애는 것에서 시작된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거나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제거하지 않으면 공감이 들어설 자리는 비좁아지기 마련이다.

내가 없어진 자리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채워지면서 공감은 완성된다. 꼭 우정이 아닌 사람의 도리라 해도 마찬가지다. 친구의 아픔과 우울을 함께 공감하고, 가슴으로 관통시켜 그를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진정한 행복’은 찾아오리라. 이웃이 어려움을 당할 때 외면하거나 실실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나누어 가짐이 참된 의리이며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이는 곧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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