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봉-대일광장
▲ 홍석봉-대일광장
홍석봉/논설위원

동해 신비의 섬 울릉도에 뚱딴지같은 괴물이 등장했다. LH 공사가 울릉읍 도동리에 10층과 8층 규모의 국민임대아파트 2동을 건립했다. 오는 9월 72가구가 입주 예정이다. 주민들은 울릉도의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새 아파트를 반기고 있지만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울릉도는 평지가 드물어 고층 건물을 세우기가 어렵다. 또 자재나 건설기계 등을 육지서 들여와야 해 건축비가 육지보다 3배 가량 더 든다고 한다. 때문에 지금까지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래야 5층 규모가 고작이었다.

10여 년 전 LH 공사가 저동리에 지은 5층짜리 아파트는 리조트 모양의 건물로 주목받았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산 언덕에 불쑥 솟은 성냥갑 건물을 세워놓았다.

한 건축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청정 섬 울릉도에 주변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소식에 기가 막힌다며 헛웃음만 지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울릉도를 왜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 같은 명소로 만들지 않고 괴물 같은 섬으로 만드는 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에게해의 산토리니 섬은 화산 폭발로 절벽이 된 가파른 바닷가에 하얀 칠을 한 가옥 수백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한다. 흰색 집과 푸른색 대문의 집들이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어우러져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을 그러모은다.

기암 절경과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는 울릉도도 화산 섬이다. 울릉도는 조금만 신경 써 관리하면 산토리니 섬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섬이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볼썽 사나운 아파트라니!

-주변 경관과 안 어울리는 10층 아파트 ‘우뚝’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도시는 말할 곳도 없고 읍면까지 흉물처럼 우뚝 서 있다.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눈만 버려 놓는다. 회색 괴물이 도시는 물론 시골까지 잠식하고 있다. 그도 모자라 이젠 섬에까지 침범했다.

콘크리트 숲이 된 아파트를 볼 때마다 숨이 콱 막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은 아파트 구입으로 귀결됐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 밀집과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주택은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아파트는 1958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국내 최초로 세워졌다. 당시 준공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전국이 아파트 천지가 됐다. 지난해 발표한 통계청의 ‘2017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 주택 1천712만 채 중 아파트가 1천38만 채로 전체의 60.6%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명 중 6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아파트 비율 및 거주는 세계 최고다.

주택난 해소에 급급한 정부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주택업체가 공사비와 분양가에 맞춘 성냥갑 아파트를 기계로 찍듯 쏟아냈다.

다양한 형태와 주변 공동체와 소통하는 아파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은 복잡한 법규와 규정에 묻혀버렸다. 결국 성냥갑 아파트만 남았다.

거기에 효율성만 중시한 고층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꿔놓았다. 대구에서 눈만 돌리면 보이던 앞산과 팔공산은 회색빛 건물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획일적 모습 성냥갑 아파트는 이제 그만

한 해 대구에만 1만여 채 이상 아파트가 공급된다,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 일대는 40~50층의 매머드급 주상복합아파트가 러시를 이루면서 사방이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가려졌다. 그것을 대구의 맨해튼이라고 자랑한다.

성냥갑 아파트 건립은 이제 끝내야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지형, 기후 등을 감안해 의미를 가진 건물을 건립해야 한다. 작품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획일적인 모습은 벗어나야 한다.

아파트는 한국의 상징이 됐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아파트에 생명을 불어넣자. 지자체는 공공건축 개념을 적용해 건립하도록 유도하자. 이제 성냥갑 아파트는 그만 짓자. 울릉도 같은 섬에는 건축 경관심의를 강화해 성냥갑 아파트는 아예 짓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후손에게 부끄럽지는 않아야 한다.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