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형 일자리사업의 의미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지난 25일이었다. 모처럼 뜻깊은 행사가 하나 있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비롯해 주변국들의 잇단 도발로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던 때여서 더 반가웠다.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이었다. 구미시장, 경상북도지사, LG화학 대표이사, 한국노총 구미지부 의장이 주인공으로 섰다. 대통령도 직접 참석해 그들과 손을 맞잡고 격려했다.

일자리는 우리 사회의 최고 현안들 가운데 하나다. 1월31일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긴 가뭄에 단비였다. 구미 행사는 그 광주를 잇는 전국 2번째 쾌거였다. 그러나 ‘광주 2’는 아니었다. 새로운 내용과 방식을 담았기 때문이다.

별도 법인을 설립해 광주시가 1대 주주로 참여하고 현대자동차 등이 투자하는 광주형과는 달리 구미형은 LG화학이 직접 투자하는 투자촉진형으로 설계되었다. 광주형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이를 정부와 지자체가 보전해 주는 방식이었지만, 구미형에서는 경북도와 구미시가 LG화학의 투자와 경영을 간접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속도감도 있을 것이고 지속가능성 면에서도 훨씬 안정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보자. LG화학은 5천억 원을 투자해 전기자동차 2차 전지의 핵심 부품인 양극재 공장을 짓기로 했다. 구미시와 경상북도는 LG화학에 구미국가산업 5단지에 6만6천여㎡ 부지를 50년간 무상임대하고, 각종 세제 감면과 함께 투자보조금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어린이집과 근로자문화센터 등 생활 기반환경을 개선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LG화학은 원래 유럽에 투자할 계획이었다. 구미시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큰 이유다. 무엇보다도 1천여 명의 직간접 신규 고용이 예상되고 있다. 관련기업들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 때 경북의 자랑이요 우리나라 산업화의 엔진이었던 구미의 경기가 전같지 않기 때문에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몇 가지 통계치를 보자. 먼저 2013년에 103억 달러에 달했던 모바일 수출은 2018년에 51억 달러로 반토막 났다. 모바일은 구미의 주력상품이다. 디스플레이도 같은 기간에 77억 달러에서 43억 달러로 급감했다. 지역 기업체의 88%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중소업체의 가동률은 지난 해 32.1%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당연히 가파르게 치솟았다. 2014년에는 2.7%였는데 2018년에는 4.6%였다. 노동자 수도 같은 기간 10만3천818명에서 9만419명으로 줄었다.

투자협약식은 시작일 뿐이다. 성공시키려면 구미시는 물론 대구와 경북이 할 일이 적지 않다. 먼저 노동자들의 정주여건이 중요하다. 요즘 청년들은 일자리와 임금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녀 교육과 문화생활 여건, 도시의 역동성 등을 포괄하는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다. 문화도시, 창조도시로 세워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다.

당연히 지역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 산학협력과 인력 양성 외에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해서도 지역 대학들이 적극 역할해야 한다. 대구 포항 경산 경주와 구미를 잇는 산업벨트 조성, 기존 관련 기업들과의 협력체계 구축 등도 구미와 경북도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해 보는 것은 따로 있다. 구미시의 노사민정 협력 거버넌스다. 장세용 구미시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한국노총 구미지부장과 경북 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참여하는 구미시 노사민정협의회는 투자협약식 하루 전날, ‘상생형 구미 일자리 추진을 위한 구미시 노사민정 노사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그들은 구미형 일자리 추진을 위한 행재정 지원, 투명경영을 통한 경영내실화, 지역인재 우선 채용 등의 원칙에도 합의했다.

바로 이것이다. 21세기형 첨단소재 산업의 대규모 투자유치를 성사시켜 낸 열쇠는 21세기형 거버넌스 행정에 있었다. 노사민정 협력 모델의 핵심 가치는 신뢰와 상생이다. 앞으로 직면하게 될 갖가지 과제들도 노사민정 모두가 오늘의 협약을 가능하게 한 신뢰와 상생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함께 풀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구미시는 노사민정 거버넌스를 다양한 주제의 정책결정 모델로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환경, 교육개혁, 도시개발, 복지 등의 생활밀착형 과제들에서도 노사민정이 머리 맞대고 함께 결정하며 함께 책임지는 모델을 뿌리내려 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일자리 투자협약에 숨어 있는 더 큰 역사적 의미일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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