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세편살’에 대한 유감

박운석

패밀리협동조합 이사장

‘복세편살’이라는 신조어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불교용어 같기도 하고 깊은 뜻이 담긴 사자성어 같기도 한 이 말은 그냥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뜻이다. 요즘 트렌드를 한마디로 집약한 말이라서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언어는 문화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신조어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거울이다. 특히 불안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신조어를 보면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거지는 갈등이 뭔지, 사람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복세편살’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말이다.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즐겁게 살겠다는 의미다. 긴장의 연속인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들의 특징은 남의 시선보다 내가 편한 것을 선호한다. 집에서는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며 모든 것을 해결한다.

요즘 신조어로는 홈루덴스족이다. 홈루덴스(Home Ludens)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에서 따온 말로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집돌이, 집순이로 좋지않게 치부되던 현상이었다. 이젠 집 밖으로 꼭 나서야만 의미있는 삶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가장 편한 곳인 집에서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드러난 현상이다. 이들은 꼭 거창한 것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일상 삶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만족을 얻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른용 색칠공부라고 하는 컬러링북이나 프랑스자수를 하며 소소한 행복을 찾고 와인 냉장고나 커피머신 같은 중소형 디저트 가전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을 겨냥한 가정간편식도 인기다. 삼복더위에 인기있는 보양식인 삼계탕도 간편식으로 포장되어 집에서도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종 원데이클래스가 유행인 것도 홈루덴스족의 복세편살을 반영하고 있다. 원데이클래스는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내용을 하루 만에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고 결과물까지 만들어내는 것이어서 인기다. 내용도 마카롱 만들기에서부터 메이크업, 핸드드립 커피 만들기, 요리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홈루덴스족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관계 맺기를 꺼려한다. 이른바 관태기(관계+권태기)다. 이들은 대인관계에 미련이 없다보니 실속 없는 오프라인 모임에도 거의 참석을 하지 않는 편이다. 관계에도 가성비를 따진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투자하는 비용과 수고 대비 관계로부터 얻는 만족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버린다.

직장 내에서는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늘어나고 있다.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동료, 선후배와 어울리지않고 혼자 움직이기를 더 좋아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에서 직장인 4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 중 10명 중 5명 꼴로 자신을 자발적 아웃사이더라고 답을 한 것이다. 또 10명 중 8명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이른바 관태기(관계+권태기)를 겪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아이러니다. 관태기에 빠져있는 사람일수록 SNS에서 관계맺기에 집중한다. 현실세계에서는 관계맺기를 거부하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상에 올리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카페인(카카오톡+페이스북+인스타그램) 중독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맺기가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단절시켜버리는 부작용도 많다. 소통을 생명으로 하는 도구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뭐, 복세편살 아닌가. 그렇지만 복잡하지 않게, 간편하게 해보자라고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화병이 생길 것 같고 얽히고설킨 사회문제는 생각하기에도 벅차다. 복세편살을 되뇌다가 문득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복잡한 세상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야 할까? 일본과 극한대립 중인 지금이 그럴 때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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