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더 큰 놈이 온다’

발행일 2019-07-31 09:29: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암호화폐 ‘더 큰 놈이 온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다. 지난 6월18일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발행 계획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세계 디지털 화폐시장은 한치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큰 불확실성에 휩싸이게 되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의 공청회와 IMF의 강한 우려 표시는 물론 일본 오사카에 모인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최고 수준의 규제도입 필요성에 대해 합의하는 등 리브라 발행이 좌초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은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 계획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 각국이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과 이용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발행만 된다면 리브라는 전 세계 금융 소비자들을 충분히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갈 수 있다. 리브라를 이용한 결제, 환전, 송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언제 어디서든 싸고 빠르고 편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금융인프라가 여의치 않은 개발도상국들의 소비자들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금융서비스로에 대한 접근성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높일 수 있다. 페이스북 이용자 수가 27억 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AI(인공지능)라는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일어날 엄청난 대규모 혁신을 전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브라는 우려할 만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운용 주체에 대한 신용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이미 이용자 정보 유출 사건으로 큰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이용자 취향에 맞춘 편협한 정보 제공 등을 통해 선거처럼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도 있는 빅브라더이다.

또 페이스북이 마스터 카드, 비자 등 100개의 세계적 기업을 유치해 ‘리브라협회’를 만들어 리브라의 독립성과 운용 안정성을 보장한다고는 하나 관련 기술개발 등 주요 업무가 집중될 것이 뻔한 이상 신용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또 다른 하나는 리브라라는 통화 자체의 안정성에도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여기에는 각종 사기나 자금세탁, 테러자금화 등과 같은 당장의 우려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리브라가 통화로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달러나 유로, 단기국채 등과 연동되는 이른바 바스켓 형태로 운영되더라도 금융쇼크나 환율변동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리브라 발행액에 준하는 (지급)준비금을 쌓아 둔다손 치더라도 바스켓을 이루는 각종 통화나 채권의 가격이 변동하는 이상 리브라 가치도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리브라라는 암호화폐 운용을 위해 개발된 기술들이 100%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리브라가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국제금융시스템에도 상당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독점문제다. 페이스북의 이용자 수를 생각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이들 중 다수가 리브라를 이용한다면 아마도 예금이나 대출처럼 전통 금융서비스 시장에서의 기존 은행 퇴출은 불가피할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단 1개의 은행만 남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금융정책 기능이 훼손될 수도 있다. 신용이 낮은 통화 대신 리브라가 사용되면 금리나 통화유통량 조정 등 해당국의 금융정책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자국통화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높은 나라도 상황은 같다. 이자가 붙지 않는 리브라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정책당국의 금리조정은 의미가 없다. 또, 리브라 준비금 조정을 위한 채권의 대량 매입 또는 매도는 급격한 금리 변동을 가져와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많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리브라와 같은 암호화폐가 발행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일찍이 잘 알고 있는 비트코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더 큰 놈이 올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니라도 결국 누군가는 발행할 것이다.”는 페이스북 경영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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