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약속 / 함민복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 시집『자본주의의 약속』(세계사,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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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발표된 지 30년 가까이 되었으니 시 속에 등장하는 간판의 상호도 지금쯤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는 과정에서 상대편과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 시인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일 수도 있고, 가까이에서 ‘엿들은’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이도저도 아니면 시적 상상력이라고 해두자. 그저께 내가 머무는 지역의 번화가(그래봤자 서울의 변두리 후미진 동네 어디쯤 되겠지만)에서 초등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너 댓살 된 여동생의 손을 붙들고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엿들었다.

상대편은 아이들의 엄마로 추정되고 다른 볼일을 보는 사이에 아마 길이 어긋난 것 같았다. “어디라고? 눈에 뛰는 간판 말해봐” “응, 여기 ‘황금 안마’ 24시” “그것 말고 다른 것?” “원조 족발” 그런 식으로 이어지다가 무슨 병원 이름을 대고서야 통화가 끝났다. 상호와 간판은 그 도시의 얼굴이고 표정이며 지역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코드이다. 간판이 문화코드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그 지역의 역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간판은 도시 전체의 사회문화적 인식을 반영하므로 자연스레 그 도시의 표정이 깃들고 품격이 결정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주된 시각적 대상이기 때문에 단순한 광고물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대변하고 상징한다. 시에 나열된 간판만으로도 당시 젊은이들의 문화의식과 소비행태를 알 수 있으며, 얼마나 외래문화에 찌들었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오로지 상업적 메시지 전달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이쯤 되면 간판공해로 몸살을 앓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은 간판 공화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간판 천국이다. 간판은 주목을 받기 위한 투쟁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포장 심리이며, 산업사회의 압도적인 충동 양식이다.

지금은 간판도 공공재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예전에 비해 많이 자제되고 세련되어졌으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각 지자체들이 조화롭지 않은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간판은 도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고 있다. 좋은 디자인과 품격을 갖춘 간판만으로도 도시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것이다. 가로 경관을 아름답고 개성 있게 가꾸기 위한 시민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삶터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을 갖게 되고 더불어 삶의 질도 높아지리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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