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엄스를 만나다

성민희

재미수필가

너무 덥다. 담장을 타고 오른 부겐베리아 꽃잎도 바싹 말랐다. 컴퓨터를 켠다. 여행을 다녀온 뒤 덮어두었던 사진이랑 메모지를 뒤적여 테네시 윌리엄스를 화면에 불러내니 함께 했던 얼굴들이 그의 묘비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날은 시카고에서 미시시피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생가가 있는 콜럼버스에 도착했다. GPS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지만 유명작가 생가라는 안내 표지가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때는 유리 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발표하여 전 세계의 연극은 물론 영화계까지 들썩거리게 만들던 작가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이다.

한 시간 남짓 더 달려서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큰 공원묘지였다. 안내소는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라, 묘지의 위치도 모른 채 무작정 입구로 들어갔다. “이 넓은 곳 어디에 가서 테네시 윌리엄스를 찾나.” 서로 수런거리는데 세 명의 인부가 나뭇잎을 쓸고 있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묘를 찾는다고 하니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으로 비석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긴 사각형의 회색 돌에 ‘테네시 윌리엄스’라는 이름이 큰 글씨로 찍힌 묘비였다. 시인, 극작가라는 설명도 있다. 원래 테네시 주의 주지사, 상원의원을 지낸 집안이었으나 할아버지 대에 몰락해 구두 외판원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전형적인 남부지역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가 뉴욕의 허름한 호텔에서 사망하기까지 1911~1983년이라는 기간도 표기 되었다. 그의 죽음은 파티에서 코케인을 섞은 와인을 마신 때문이다.

알콜 중독자인 그가 만취 상태로 토하다가 질식해서 죽었다, 혹은 병뚜껑이 목에 걸려 죽었다는 등 이유도 분분하지만 어찌 되었든 미국 극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작품의 저자, 체호프 이 후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았던 사람의 무덤치고는 너무나 평범했다. 꽃 한 송이 없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도로와의 경계 자리에 서 있는 묘비는 자폐증과 절망, 고뇌와 고통으로 가득했던 주인의 지난 세월을 말해 주는 듯했다.

사진을 찍는데 비석 아래쪽의 짧은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The violet in the mountains have broken the rocks’ 란 문구다. 그의 작품에서 한 말이다. 직역을 하면 ‘산의 바이올렛 꽃이 바위를 부순다.’ 로 무슨 메타포일까 한참 생각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지니 어떤 여자가 미국 여배우 패트리샤 클락슨의 연설에서 이 구절을 듣고 감격해서 썼다는 에세이가 나왔다. 여배우가 말했다고 했다. “이 글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나를 압박하는 어떤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움과 자연과 화려함과 살아있는 것(beautiful, nature, colorful, alive)의 힘에 의해 부서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바위를 부수는 바이올렛 한 다발이 있습니다.” 글을 쓴 여자는 자기에게 바이올렛은 무엇이며 바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겠지만 테네시 윌리엄스에게 있어서의 바위는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부터 따라다니던 질병, 가정불화, 누나의 정신병, 동성애라는 자아에서 오는 정서적인 불안정, 작가로서의 명성이 주는 불안감, 우울증 등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것을 이겨보려고 글을 쓰며 극 중 인물을 통하여 그의 내면을 분출하고 치유하려고 애를 썼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고뇌에 무엇이 바이올렛이 되어주었을까. 그는 얼마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묘지를 지나 영혼의 고향 ‘엘리지안 필드’에 내리고 싶었을까.

그는 과거에 대한 집착,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술과 섹스를 탐닉하는 작품 속의 인물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독과 욕구를 시정적인 언어로 잘 형상화했다’는 평은 물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과 냉혹함을 능숙하고 무리 없이 조율하여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천박한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비난도 받았다. 세상의 평가가 어찌되었던 비석에 새겨진 글에서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은 아름다움과 순결을 갈망한다는 그의 생각을 읽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우리는 서둘러 묘지를 빠져나와 허름한 서민 아파트 앞에 섰다. 마구 자라난 누런 잔디 위에 ‘테네시의 어린 시절 집’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어느 층 몇 호에 살았는지 전혀 안내도 없는, 그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낌도 없는 누군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서 플래쉬를 터뜨려가며 우리는 회색빛 낡은 건물 사진을 찍었다. 한 때는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와도 우정을 나누던 옛 영광을 우리는 알고 있다며 마구 카메라 셔트를 눌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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