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국현논설실장
▲ 지국현논설실장
한일 관계가 지난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은 지난 2일 넘지말아야 할 선을 끝내 넘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가)에서 배제하는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 우리의 명줄을 죄려는 엄청난 도발이다.

민간 분야에서 연간 1천만 명(2018년 기준 방한 일본인 292만 명, 방일 한국인 753만 명) 이상이 상대국을 방문하며 교류를 확대하고 신뢰를 쌓아온 양국 관계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양국 관계 경색은 경제에 이어 군사협력, 관광, 문화, 학술, 스포츠 등 전 분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강 대 강’ 대치 때문에 타 분야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자 배상 판결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이면에는 급격한 성장으로 일본 경제를 위협하는 한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없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들 저지른 문제 경제보복 연결시켜

일본이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사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연결시킨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사태 확산의 징후가 여러번 포착됐지만 간과한 우리 정부의 무대책, 무능력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일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역시 맞대응할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 부당한 조치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호하게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유례없는 초강경 발언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이 우리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우리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주한 일본대사에게 “우리국민은 (일본을) 더 이상 우호국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외교관계 단절 등의 초강경 조치 직전에나 들을 법한 격한 톤이다.

민간 분야도 들끓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일본의 이번 조치를 규탄하는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과 일본 관광을 하지말자는 시민 운동도 확대되고 있다.

사태는 일본이 도발하고 키웠다. 그러나 목소리만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당연히 강온 양면 전략으로 임해야 한다. 또 좀 더 냉철하고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국민들도 정도 이상으로 공포감에 휩싸이거나 일본을 혐오할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추이를 지켜보면서 정부와 경제계의 대책을 지켜보는 것이 옳다. 특히 정부는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나 보고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당장 뚜렷한 것이 없다면 외교적 노력을 더욱 확대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국민 감정을 달래느라 설익은 대책을 남발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결정적으로 아픈 ‘한 수’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야 한다.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폐기같은 양측에 모두 피해를 줄 수있는 조치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에 도움을 주는 그 어떤 조치도 안된다. 북한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즐기고 있을지 우리국민은 보지 않아도 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는 싫으나 좋으나 일본과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지정학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

---해법 찾기 어려운 상황…우리 실력 키워야

국가 간 관계는 가까울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상존한다. 한일관계는 당분간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언젠가는 경색국면이 풀린다. 당장 발등의 불은 그 시기를 앞당기는 노력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 긴 호흡, 긴 안목으로 대처하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변화 요인이 있을 때 중요한 팩트를 놓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용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각종 대응 명분을 쌓아가야 한다. 잠깐 분노하고 말아서는 안된다.

열흘 뒤면 8·15 광복 74주년이다. 더 이상 일본과의 과거사가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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