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황병승

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생각들/ 당신의 천장을 쿵쿵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미치게 하는 생각들/ 미쳐가는 당신을 조롱하는 생각들/ 당신을 침대에서 벌떡 일으키는 생각들/ 당신을 고무(鼓舞)시키는 생각들 순식간에/ 당신의 고무를 무화시키는 생각들/ 당신을 돌처럼 굳어가게 하는 생각들/ 당신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생각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무덤으로 만드는 생각들/ 무덤 속에서 당신의 머리칼을/ 손톱을 자라게 하는 생각들/ 죽어도 죽지 않는 생각들/ 관 속의 뼈들을 달그락거리게 하는 생각들/ 무덤이 파헤쳐지고 장대비가 쏟아져도/ 백 년 이백 년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

- 월간 《현대시》 201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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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시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지 열흘이 넘었다. 7월24일 처음 주검이 발견되어 보도되면서 단박에 인터넷 실검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잠시였고 한 시인의 죽음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경찰은 사망한지 약 보름쯤 지났을 것이라 추정했다. 정확한 사인은 다음날 부검을 통해 밝힐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알코올중독증세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았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 아직 구체적인 사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달 25일 이후 고인과 관련한 뉴스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 내가 다니던 회사에 70년생 신입여사원이 한 명 들어왔다. 사무실 직원 하나가 “캬, 드디어 우리 공장에도 미래파가 입성했구먼!” 그러면서 다들 그 신입사원을 기성의 경계 밖 날선 신세대로 규정했고, 낯선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다. 황병승 시인을 바라보는 내 느낌도 그랬다. 70년생 황병승은 2005년 ‘여장남자 시코쿠’란 단 한 권의 시집으로 한국 시단을 후끈 달구었던 시인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괴물 신인의 괴팍한 등장’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시 아닌 것을 긁어모아 시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라며 찬사를 보냈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권혁웅은 황병승을 비롯해 젊고 파격적인 경향의 동시대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처음 붙이고 미래파 논쟁을 이끌기도 했다. 그들의 ‘획기적인 형식실험’을 ‘실속 없는 언어유희’라며 쏘아붙이고 적대시하는 기성 시인들에게 황병승은 개념상 ‘주적’임에 틀림없었다. 그 미래파 기수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 역시 기존의 시 문법은 깡그리 파괴되어 ‘시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난해하기 그지없다. 누가 그에게 시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 중 하나”라고 답했다.

‘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이 그 놀이였으리라. 그는 어느 시에서 “나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한 번만이라도 생긴 대로 살고 싶은 것 하지만 그게 안 돼서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나는 엉망으로 늙어간다”고 했다. 그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그의 시에 입을 댈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며, 우리 모두가 ‘공범들’이라고 입술을 깨무는 동료 시인들도 있다. 시라는 게 무슨 대단한 것이라면 몰라도 이제 더 이상 간섭 말고 지그시 눈 감아 주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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