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

발행일 2019-08-07 09:50:3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et)이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현대인을 위한 스트레스 대처법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최근에는 일상의 금언(?)이 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폭염과 열대야가 일상이 된 대구 사람들의 ‘여름나기 노하우’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없을 듯하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대집트(대구+이집트)라고 불릴 정도로 대구의 여름 무더위는 정말 덥다. 낮에는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밤에는 25도가 넘는 열대야가 거의 매일 밤 나타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쳐 짜증만 내며 지낼 순 없고,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특이하고 이색적인 게 주목받는 시대, 대구에서 무더위가 거듭났다. 치맥축제, 호러페스티벌이 그렇게 탄생했고 나무심기와 담장허물기 운동도 마찬가지 이유로 대구에서 뿌리내렸다.

◆ 폭염으로, 즐기고 돈 벌자

언제부턴가 대구의 7, 8월이 축제의 계절이 됐다. 피할 수 없는 폭염이 즐길거리, 볼거리 아이템으로 변신한 것이다. 여기다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폭염이 국내외 관광객을 모으는 지역경제 효자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8월9일부터 11일까지 대구스타디움 시민광장에서는 대구국제호러페스티벌이 열린다. ‘짜릿하게, 시원하게, 살벌하게, 호러야~ 놀자’란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대구 폭염이 테마인 행사다. 올해는 세르비아 체코 일본 중국 등 4개국에서 5편의 작품을 출품한다. 무대 행사 외에도 거리퍼포먼스와 게임형식공연 등도 마련돼 흥미를 더한다. 또 페스티벌 기간 중 호러연극제(8월1~8일)가 열려, 스릴과 긴장감 넘치는 공연으로 열대야에 지친 시민들에게 재미와 함께 휴식까지 준다.

7월에는 전국적 인기를 끌고 있는 대구 치맥페스티벌(7월17~22일)이 두류공원과 이월드 등 4곳에서 열렸다. 2019년 축제에는 100여 개 치킨업체와 10개 수제맥주 업체, 5개 세계 맥주 브랜드가 참가했다. 시민들은 마련된 부스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고 마시며 EDM파티 등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고 치맥 아이스펍, 치맥 아이스놀이터 등 40여 개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해 한여름 무더위를 잊었다.

올해로 7년째 행사를 치른 치맥페스티벌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등 흥행 보장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해외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국내 최정상급 포크뮤지션이 참여해 포크공연, 포크송콘테스트를 진행한 대구포크페스티벌도 7월26~28일 김광석콘서트홀 등 대구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축제성 행사 외에도 폭염에서 착안, 기획한 박람회가 대구에서 열렸다. ‘제1회 대한민국 국제 쿨산업전(7월11~13일)’이 그것이다. 쿨산업이란 기후 변화에 따른 폭염과 미세먼지 등 자연재해에 선제 대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산업을 통칭한다.

올해는 100여 업체가 200여 개 부스에서 폭염 관련 신기술과 제품을 선보였다. 클린로드 쿨링포그 쿨루프 그늘막 차열도료 관련 기술 및 제품과 쿨 섬유 및 소재 관련 제품이 전시됐다. 쿨 관련 패션 의류 침구 화장품 제품은 특히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 대구의 놀라운 여름기온 그리고 신풍속

대구의 폭염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200만 명이 넘는 거주인구에다 인구밀도마저 높은 대도시가 분지형 지형에 위치한 점이 우선 거론된다.

해발 1천m가 넘는 산들(팔공산 1천193m, 보현산 1천124m)이 대구분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도심의 뜨거운 열기가 오고나가는 바람길이 막혔고, 이는 또 외부 공기가 높은 산을 타고 넘으면서 기온이 높아지는 푄현상(Fohn phenomenon)까지 일으켜 도시 기온을 더 높여준다는 것이다.

대구분지에 형성된 도시인 경산시, 영천시가 매년 여름 전국 최고기온 지역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지형적 특성의 사례라는 것이다.

여기다 대도시 자체의 열섬 현상도 대구 기온을 높이는 데 한몫한다는 분석이다. 열섬(Heat Island)은 인구와 건물이 밀집돼 있어 다른 지역보다 온도가 높게 나타나는 도심지를 말한다. 각종 인공시설물과 포장도로의 증가, 주택 및 아파트, 빌딩 등에서 나오는 인공열 그리고 거리를 질주하는 자동차 배출열이 도시기온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

특히 대구의 경우 부산 등 다른 대도시와 달리, 도심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단핵도심이라는 점이 열섬 현상을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자연지형적 조건에다 인공적 조건까지 더해지면서 대구의 기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기록적인 폭염은 도심의 풍속도 새로 만들어가고 있다. 대구에서는 여성들의 여름패션 용품인 양산을 찾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역 백화점, 마트 등에 따르면 따가운 햇볕을 막기 위해 양산을 구매하려는 20~30대 젊은 남성 고객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실제 양산으로 햇빛을 가리면 온도를 7도 정도 낮출 수 있으며, 체감온도는 10도 이상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도심 한복판에 설치된 폭염을 상징하는 이색 조형물도 눈길을 끌었다. 6월 대구 중심가 한 백화점 앞 공터에는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핸드백, 하이힐 조형물이 설치됐다. 이 백화점에서는 2018년에도 ‘바닥에 눌어붙은’ 2.8m 길이 대형 슬리퍼, 러버콘(꼬깔콘), 달걀프라이 조형물을 전시했다.

◆여름기온 조금이라도 낮춰보려고

대구 폭염이 점점 강하고 길어지자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대구의 낮 최고기온 33도 이상일 수는 2014년 22일, 2015년 21일, 2016년 32일, 2017년 33일, 2018년 40일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 같은 기온상승 추세가 2015년을 기점으로 한풀 꺾였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열대야(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 일수와 온열질환자 발생률 순위에서 전국 최고도시라는 타이틀을 타 도시에 내줬다는 것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반적인 기온상승 현상으로 다른 지역의 기온이 대구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올라간 점도 있겠지만, 어쨌든 대구시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나무심기운동, 담장허물기운동 등 녹화사업과 최근 5년간 폭염 저감시설을 대폭 확충한 것이 효과를 거뒀다는 설명이다.

실제 대구에서는 2017년부터 쿨링포그, 쿨루프, 그늘막 등 폭염 저감시설을 늘리고 있으며, 2018년부터는 열 반사 성능이 높은 특수물감 칠감을 바르는 차열성 포장을 적용하고 있다. 또 2018년 9월 개정된 재난안전법에서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규정함에 따라 대구시는 ‘폭염 및 도시 열섬현상 대응 조례’를 제정하고 시청에 폭염전담팀을 신설했다.

지속해서 도시 기온을 낮추기를 위해 대구시는 2021년까지 180억 원을 들여 도시 바람길 숲 조성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클린로드 시설 확충에도 2021년까지 21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폭염과 관련해 장기적이고 구조적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7월 쿨산업전에서 정응호 대구녹색환경지원센터장은 ‘대구 신천의 찬 공기 유동성 변화 분석’ 발표에서 “대구의 경우 찬 공기가 주로 가창 일대 산지에서 생성되는데, 이를 도심으로 끌어올 수 있다 대기 순환성을 증대 시켜 대구 전역의 기후환경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pjw@idaegu.com

1 동대구역 광장대프리카, 대집트라고 불릴 정도로 무더운 대구, 시민들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란 말처럼 이 폭염을 아이템으로 삼아 다양한 이색 여름축제와 박람회를 열고 있다. 덥더라도 이왕이면 흥겹게 여름을 보내자는 시민들의 생각의 변화가 치맥축제와 호러페스티벌, 그리고 쿨산업 박람회를 탄생하게 한 것이다.사진제공=대구시청, 연합뉴스
2 대구 치맥페스티벌
3 대한민국 국제 쿨산업전
4 남성 양산
5 쿨링포그
6 대구 포크페스티벌
7 국제 호러페스티벌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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