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 이은봉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돌에 맞은 호수는 이내 파문을 일으켰다/ 애써 마음 가다듬고 있는 호수를 향해/ 돌을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파문은 둥근 물결도 품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파도도 품고 있었다/ 파도는 세상을 떠도는 한 자루 칼!/ 칼을 품고 있는 파문이 문제였다/ 칼은 어떤 것이든 찌르기 마련!/ 아무데서나 상처를 만들기 일쑤였다/ 매번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한바탕 곪아 터지고 나서야 겨우 아물었다/ 누군들 아프지 않으랴/ 누군들 반란을 꿈꾸고 싶으랴/ 공들여 마음 가라앉히고 있는 호수를 향해/ 돌을 던진 것 자체가 문제였다/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돌을 맞고 어찌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랴.



―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작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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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며 감정의 동물이란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 감정이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끔 한다. 사람과 선린하게도 반목하게도 하는 것이다. 누구와 싸우고 나면 이겨도 아프고 져도 아프다. 따라서 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게 상책이지만 살다보면 부딪히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은근히 시비를 걸어오거나 부아를 돋우는 말 한마디가 날카로운 손톱이 되어 내 자존심을 할퀸다. 꾹 참으면 되는데 아야 하는 순간 파문은 커지고 만다. 그 마음의 파문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인류의 전쟁사를 보면 19세기까지는 전쟁을 시작한 나라들이 대부분 승리했지만, 전쟁의 속성이 복잡다단해진 20세기 이후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승리를 한 측에서도 엄청난 대가를 치룬 것에 비해 실익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건 개인 간의 싸움이건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칼을 품고 있는 파문이 문제였다’ 서로 상처만 입고 손실만 가져오는 싸움은 애당초 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돌을 던지지 말아야 했다’ 파문이 인 이후에도 서로 네가 먼저 던졌니 손가락질을 하면서 발단과 책임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상례이다.

대개는 상처를 입은 측보다 그 상처에다 소금을 먼저 뿌린 쪽에 더 많은 책임을 묻는다. 영어에 Pyrrhic defeat라는 말이 있다. ‘진 것과 다름없는 승리’라는 뜻으로 Pyrrhic victory라고도 한다. 파이루스라는 에피루스의 왕이 B.C 280년에 이탈리아를 침공해서 로마를 정복했는데 전쟁에 따르는 손실이 너무나 커서 파이루스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승리할 거면 나는 진 거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그 뜻이 굳어져서 ‘손실이 너무 커서 승리를 거두어도 남는 게 없는, 진 것과 다름없는 승리’를 ‘파이루스의 승리’ 혹은 ‘피뤽 디피트’라고 부른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런 진거나 다름없는 승리에 피 흘리고 핏대와 목청을 돋우는 일들이 넘친다. 한번 상처가 났다하면 아물기도 쉽지 않다. 파문이 번지는 순간 그들 모두가 큰 상처를 입고 패자가 되고 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주 “일본의 일방적인 무역보복 조치는 일본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며 조속한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그리 되면 가장 좋겠으나 쉽지는 않아 보인다. 때로 그 상처와 손실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수 없는 싸움도 있다. 기왕의 상처에 소금을 마구 뿌리고 돌을 던지는데 ‘돌을 맞고 어찌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랴’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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