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의 생생한 정황 등을 담은 문서와 서책 수만 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에서 한꺼번에 발견됐다. 앞으로 우리 민족의 항일독립운동 규명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료적 가치가 엄청난 이들 자료는 지난 1972년 최부잣집 사랑채에 불이 나 창고에 급히 옮겨두었던 것들로 지난해 6월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최부자 민족정신선양회’는 최근 한국학중앙회 등에 의뢰해 한글 번역을 추진 중이다.

발견된 자료에는 당시 민족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의 생각, 사회상, 역사적 상황 등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문서들이 들어 있다. 편지, 엽서, 명함, 육영사업 관련 자료, 경주지역 국채보상운동 참여 인사 명단 등과 함께 최부잣집의 과객 접대 현황, 은행 거래 문서 등이 우선 눈에 뜨이는 것들이다.

1910년대를 전후한 편지 자료는 4천여 통에 이른다.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자료들이 적지 않다. 말로만 전해지던 선열들의 생각과 행적이 담겨 있다. 구체적 역사 자료들이다.

경주 지역의 국채보상운동과 관련한 자료들도 발견됐다. 참여한 5천86명의 이름과 기탁금액을 적은 기록, 대구본부로 보고한 문서와 함께 지역민의 동참을 호소하는 광고문 등도 나왔다. 잘 분석해 지역별 국채보상운동을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해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백산무역주식회사의 회계보고서, 대차대조표 등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경주 최부잣집 등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산무역은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정 등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만석꾼 최부잣집 집안의 200년에 이르는 추수기를 기록한 250권의 서책도 조선 후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크고 작은 항일독립운동은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운 상황이 적지 않다. 조선총독부나 일제 경찰의 항일운동 탄압자료를 근거로 애국지사들의 공적을 입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발견된 자료들은 항일독립운동을 세세하게 재조명할 수 있는 귀한 사료들이다. 고증과 한글 번역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74주년 광복절에 앞서 향토의 경주 최부잣집에서 항일독립운동 자료가 대거 발견됐다는 소식은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인다. 소강 상태이긴 하지만 일본의 경제보복이 노골화 되는 시점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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