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문대현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진 뜨거운 흙이여

-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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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는 1984년 문대현 작사, 작곡의 민중가요다. 지금은 방송음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대현은 성균관대 무역학과 82학번으로 당시 22살이었다. ‘여행을 가도 슬프고 연애를 해도 슬펐던’ 시기에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서 30분 만에 만든 노래였다. 이 노래는 곧장 그의 주도로 1984년 결성된 성균관대 노래동아리 ‘소리舍廊’에 의해 초연되었다. 큰 호응을 얻고서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만 불리다 1986년부터 구전되어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노찾사’ 2집과 안치환, 김광석 앨범에 수록되면서 ‘대중가요’로 널리 퍼졌다.

문대현이 음악을 하게 된 동기도 그렇거니와 그의 음악은 형에게서 받은 영향이 크다. 문대현의 형 문승현은 서울대 정치과 78학번으로 국내 최초 민중가요 노래패 ‘새벽’에서 활동했으며 ‘노찾사’를 결성한 주역이었다. 그가 만든 노래 ‘그날이 오면’ ‘사계’ '오월의 노래' 등은 일반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암울했던 80년대 민중가요의 선두주자였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시대의 아픔을 반영한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등 숱한 명곡들을 남겼다.

노래를 통해 독재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꿔왔다. 문승현과 더불어 원년 ‘노찾사’ 멤버인 한동헌은 서울대 경제과 77학번으로 오랫동안 ‘노찾사’를 이끌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요구를 ‘지성적 대중음악’이라고 진단했고 그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 지성적 대중음악이란 세상과 삶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깊이 있게 담아 표현해내는 품위 있는 음악을 뜻한다. 한동헌은 김민기와 김광석의 노래, 정태춘의 몇몇 노래, 이적의 노래, 외국의 경우 레너드 코헨이나 밥 딜런의 노래 등을 예로 들었다.

문대현은 노랫말의 배경에 대해 “당시는 전두환이 한일문화교류를 한답시고 일본 가서 천황 알현한다고 난리칠 때였어요. 민기 형의 ‘천리길’이나 ‘아침이슬’의 상징적 이미지 등이 뒤섞여 내재했다가 술기운에 그렇게 나온 것 같아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 속에서 무엇도 할 수 없어 자괴하던 나의 독백이었다며 “그 광야는 어느 시인의 것이기도, 술 취해 부르던 노래 ‘아침이슬’의 광야이기도 하다”고 했다. 물론 ‘어느 시인’은 이육사를 말하며, 만주벌판에 말달리던 독립군과 육사의 ‘광야’를 단박에 연상케 하는 가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어졌다. 각종 기념식에서 전에는 전혀 불리지 않았던 뜻밖의 노래들이 등장하곤 했다. 국가기념식 중계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고 보편적인 미추와 품위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제 경기 광주시청에 임시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남한산성아트홀 앞마당으로 이전 안착시키는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 마지막에 ‘광야에서’를 합창했다. 저 들판 광야에서 뜨거운 흙을 움켜쥐는 날, 그날이 와서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우리의 노래를 뿌리자.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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