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싹 틔우는 산양산삼 잔뿌리 끝까지 옹골찬 푸른 숲 맑은 공기의 기운

발행일 2019-08-28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45> 문경 ‘자연에 맡기는 삶’

문경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산양산삼의 모습.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는 모두 훌륭한 약초다. 이 중에서 으뜸은 무엇일까? 아마도 산삼일 것이다.

산삼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린 아들을 삶아 먹여야 한다”는 스님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아들 삶은 물을 드려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대문으로 걸어들어 오는 아들을 보고 놀란 부부가 솥 뚜껑을 열어보니 그 속에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효(孝)를 강조하던 시대상을 반영한 이야기다.

가까이는 1980년대에 강원도의 한 심마니가 돌아가신 할머니 꿈을 꾼 후, 650년 된 천종삼을 캐 모 재벌 회장에게 7천800만 원에 팔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당시 서울 은마아파트 34평형 분양가가 2천35만 원이었으니,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산삼이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은 그만큼 귀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무분별한 산삼 채취로 진짜 산삼을 찾기가 어렵다. 근래에는 산삼을 산에서 재배한 ‘산양산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경의 깊은 산속에서 산양산삼을 비롯해 황기와 감초, 더덕 등 약초를 재배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강소농이 있다.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 대표 이성호(66) 대표와 부인 이혜숙(63)씨다. 이 대표는 6만여 ㎡의 산속에서 산양산삼을 키우고, 1천300여 ㎡의 시설에서 황기와 감초·더덕 등 약용식물을 키워서 연간 4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이성호 대표가 더덕줄기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이 있는 삶을 선택한 자연인

이 대표는 직업 군인이었다. 40년 간 군에서 복무했다. 전역후 산에서 인생 2모작의 삶을 살고 있다.

“군대에서 낙하훈련을 하다가 우연하게 편백나무 숲에 내렸어요. 그때 쭉쭉 뻗은 편백나무의 아름다움에 취했어요. 그후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이 대표는 15년 동안 귀농 준비를 했다. 제대 후 연금에 의지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평생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랜 준비과정에서 산나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산양산삼’이었다.

2007년 본격적인 귀농작업에 들어갔다. 일 년 동안 한약진흥재단에서 시행하는 한약관련 교육을 받는 등 착실한 귀농 준비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귀농 초기 1kg에 15만 원 정도인 산양산삼 종자를 200만 원에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산양산삼에 대한 환상에 빠져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초창기의 어려움은 극복했고, 매일 푸른 숲과 맑은 공기와 마주하면서 살아 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 귀농에 성공했다고 스스로 믿는 ‘자연인’이 됐다.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느릿느릿 살아가는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는 중이다.

‘자연에 맡기는 삶’이란 농장이름도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 대표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문경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에서 이 대표가 산양산삼 밭을 돌보고 있다.
◆쉽고도 어려운 산양산삼 재배

산삼을 재배하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산에 씨앗을 뿌려두면 산이 싹을 틔우고 산이 키운다.

그러나 다른 작물보다 생육 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무엇보다도 환경조건이 맞아야 한다. 토심이 깊고 적당한 경사로 물 빠짐이 좋아야 한다. 숲도 적당하게 우거져 그늘이 80%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반음지식물이라 능선보다는 북향의 골짜기가 좋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라야 한다.

산삼 씨앗을 파종하면서 이 대표는 꼭 지키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씨앗은 반드시 3알씩 줄파를 하거나 점파를 한다. 한 알은 사람이 먹고, 다른 한 알은 산짐승이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나머지 한 알은 싹이 나지 않거나 자라다가 죽더라도 땅에 돌려준다는 의미다.

문경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에서 키운 산양산삼.
◆임업계의 아이디어뱅크

산삼의 효능이 좋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누구나 산삼을 몇 뿌리 먹고 무병장수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진짜 산삼은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산양산삼’이다. 면역력을 높이고 혈액순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자연의 산물이라 쉽게 생산하기가 쉽지않다.

이성호 대표는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소비자들이 쉽게 산삼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바로 새싹 산양산삼이다.

산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산양산삼의 묘삼을 채취해 작은 화분이나 바구니, 스티로폼 상자 등에 심어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방식이다.

가정에서 50일 정도만 키우면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 대표는 “임산물 중에서 부가가치가 높다고 하는 산양산삼의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도시농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성호 대표가 산양산삼의 성장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 아파트식 산약초 재배

이 대표는 “국토의 64%인 산에는 무한한 경제적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잘만 이용하면 환경도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요즘 아파트형 산약초 재배에 도전하고 있다.

길이 60cm에 어른 팔뚝 굵기의 조립식 플라스틱 원통에 상토와 친환경 유기농 비료를 채워 넣고 재배한다.

330㎡에 1만6천 개의 원통을 배치할 수 있다. 노지재배와 비교할 때 6천㎡와 맞먹는 면적이다. 토지면적을 노지재배의 5.5%수준으로 크게 줄인 집약형 재배다.

이것을 도시농업에 적용할 경우 건물 옥상에서 약초인 황기나 감초를 재배할 수 있다. 55㎡(16평) 정도의 옥상에 재배할 경우, 1천㎡(300평)의 밭에 황기를 재배하는 것과 같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무엇보다도 작은 면적에서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 또한 도시농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에 맡기는 삶 이 대표가 사양산삼 밭을 가꾸고 있다.
◆ 산채수 개발로 새로운 시장 개척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국물문화’다. 밥상에 된장국에서부터 쇠고기 국까지 국물이 빠지는 법이 없다.

그 국물의 기본은 육수(肉水)다. 쇠고기는 물론이고 멸치와 명태까지 넣어 다양한 육수를 우려낸다.

이 대표가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는 식물성 육수다. 산과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을 활용해 식물성 육수인 ‘산채수(山菜水)’를 만든다.

현재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과 함께 상품화를 준비하고 있다. ‘산채수’는 식물성이라 시원한 맛을 낸다. 산채수로 고기를 삶으면 비린내가 없어져 고기의 맛이 한층 더 좋아진다. 산채수를 활용한 미세먼지 드링크도 개발 중이다.

이 대표가 홍상철(왼쪽)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과 산양산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임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꿈

귀농 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었다. 사기꾼에게 속아 15만 원하는 산삼 씨앗을 200만 원에 구입하기도 했고, 수확을 앞두고 세 번이나 도난을 당했다.

도둑은 밤중에 산 뒤편으로 넘어와 오랫동안 공들여 키운 산삼을 훔쳐갔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8천만 원이 넘는다. 도둑맞은 것도 아깝지만, 애써 가꿔놓은 삼밭은 마구 짓밟아 놓아 어린 산삼들이 망가진 것이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대표가 키운 산양산삼의 품질을 믿고 찾아주는 고객들을 보면서 헝클어진 마음을 다잡는다. 소문을 듣거나 블로그를 보고 찾아오는 고객들에게는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한다. 단골 고객만 대략 250여 명에 이른다.

문경 자연에 맡기는 삶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산양산삼 모습.
지난해 산림조합으로부터 ‘임업인상’을 수상했다. 요즘 임업관련 강사로 활동하는 것도 청년들에게 임업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길이다. 임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젊은 청년들이 많이 들어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성호 대표는 “산을 사랑하고 활용할 계획만 있다면, 그동안의 경험과 축적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겠다”고 밝힌다.

그는 임업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산양산삼과 더덕, 잔대 등 산약초를 활용한 체험장을 만들고 6차산업화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이성호 대표가 더덕농장을 돌보고 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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