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하는 날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하늘빛이 달라졌다. 가을 색이 묻어난다. 하얀 구름 두둥실 떠 있고 매미 소리마저 잦아들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산들은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 전 마지막 푸르름을 더해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는 듯하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일가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모두가 산소를 돌아본다. 자식 된 도리지 않겠는가.

산소가 위치한 산 중턱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알밤이 탐스럽게 영글어 반질반질 익어가고 있다. 인적이 드문 산속이라 떨어져 벌어진 밤송이 사이로 사이좋게 갈색의 밤톨들이 방글방글 웃고 있다. 막내가 손으로 집어 들어 살펴보다가 다시 제 자리에 놓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밤은 우리가 먹을 것이 아니라 산짐승들의 겨울 먹이라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우리가 도토리나 알밤을 주워서 가 버리면 그들은 배가 고파 겨울이 되면 근처 마을로 내려올 것이라고. 어느새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에게 내심 놀라며 주위를 돌아보니 억새가 자기도 동의한다는 듯 너울너울 팔 흔들며 춤추고 있다.

묘소 입구에 들어서니 봉우리 위로 자란 풀들이 삐죽삐죽 솟아올라 키를 넘기고 있다. 팔을 걷어붙이고 벌초를 시작하려 하자 어르신들의 주의사항이 이어진다. 우선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하시더니 준비해온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신나게 분사하신다. 가을이 되니 독사가 많이 있을 터이고, 벌도 독이 한창 올라 있을 때이니만큼 조심조심 행동해야 한다고 이르신다. 벌초하다 해마다 벌에 쏘이는 일이 발생하였다. 아무리 조심하여도 누군가는 벌레에 물리거나 벌에 쏘여 고생하였다는 후일담을 듣기도 하였다. 특히 풀밭에서 집을 짓고 사는 땅벌이나 말벌은 정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신다. 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집안 아저씨는 벌이 싫어하는 색으로만 골라서 옷을 입고 향수도 뿌리지 않고 단단히 준비해왔다며 자신감을 드러내신다. 풀이 우거져 있는 곳에 뱀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등산화까지 신고 오셨다.

벌초가 시작되면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은 묘에 자란 풀을 낫으로 베기 시작하신다. 장갑을 끼고서 정성 들여 이발을 시켜드리고 계신다. 따갑게 내리쬐는 가을 햇볕에 연신 땀을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떠나지를 않는다. 가장 웃어른이다 보니 조상의 머리를 이발시켜드린다고 하시며 조심스레 풀을 자르신다.

과거에는 산소에 풀이 많이 자라있는 모습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요즘에는 일가친척들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모두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산소를 찾아가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명절 즈음에서야 흩어져 있는 친척들이 날짜를 맞추어 함께 소풍 삼아 가는 날이 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산소를 찾아간 것이다. 어르신들이 묘를 정리하는 동안 그 아래 순위 어른들의 몫은 예초기로 잡풀 베기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맨 아래 순위 젊은이들은 나머지 잡다한 일들을 맡아 한다. 만들어 놓은 음식 짐을 옮겨오고 음료수를 가지고 가서 일하시는 어른들의 목을 축여드리고 베어 놓은 풀을 옮기고 뒷정리하는 일들, 집안의 막내들의 몫이다. 벌초하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니 여기서도 손아래 손윗사람이 구별된다.

그 모습을 보니 ‘벌초하는 날’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이즈음이면 늘 입안에서 맴도는 시인의 시 ‘심술쟁이 가을장마 때문에 잡초가 배꼽까지 자라 있다. 오늘도 울 할배는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의 두 손 꼭 잡아 주시며 반가워하신다/ 예초기로 인적이 드문 길을 터 가며 산소로 올라가 “할배요! 아부지 어무이요! 씨돌이 왔심더” 반백 년 동안 다녀도 언제나 울 할배는 너틀 웃음 지며 왕사탕 한 개씩 주신다/ 코흘리개 시절 해가 노을 속으로 떠난 후 사랑채로 가면 담배쌈지에서 왕사탕 한 개 주신다. 할배 무릎에 앉아 먹다가 잠이 오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 푸른 꿈을 꾸었고, 새벽이면 술상 차려온 어머니에게 씨돌이부터 찾으시던 울 할배//…중략…//할배요! 씨돌이 왔다 갑니더. 추석 때 오겠심더.’

우리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분들, 그분들의 봉분 주변에 난 풀을 베어 깔끔하게 정리하는 풍속인 벌초를 금초(禁草)라고 하였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벌초하는 날만은 우리들의 일가친척들, 조상님들, 후손들이 만나 서로 교감을 잘 나눌 수 있기를. 그리하여 벌초하러 가는 그 길마저 자연과의 행복한 만남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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