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강시일 기자
▲ 경주 강시일 기자
일본이 우리나라로 수출하던 일부 품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경제적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보복이라는 설에 일본은 다양한 구실로 변명하며 새로운 카드로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응책에 따른 위정자들의 자세에 있다. 국민들이 힘을 모아 대응해도 어려울 판에 위정자들은 서로 삿대질이다.

정부가 일본의 경제적 압력에 맞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선언하자 여당은 “일본의 오만에 쐐기를 박는 우리의 민족정기를 살리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 환영했다. 그러나 야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구하기 위해 국면의 전환을 꾀한 것”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의 정서를 양분화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작금의 현실에 경주 최부자집 창고에서 발견된 문서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말로만 전해내려오던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운동, 국채보상운동,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천 등의 미담을 증거하는 문서들이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냈다.

경주 최부자는 일본의 무력을 앞세운 경제적 침략에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항거했다.

일제는 조선을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경주 최부자의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관리인을 지정해 최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맞서 경주 최부자는 일대 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당시 전 재산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최부자는 월성여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대구대학교 설립에 앞장 서 계몽운동과 육영사업에 나설 때도 전 재산을 털어 넣었다. 이러한 흔적들이 문서로 고스란히 남아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도 남음이 있다.

경주 최부자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 사실은 기구성책, 과객도기, 식상기 등의 창고에 묻혀있던 문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손님에게는 후하게 대접하라’ 등 최부자 가훈을 철저하게 실천한 흔적이요 증거다.

톨스토이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책으로 제언한 삶의 지침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금융업으로 200년간 지속해 왔던 부의 축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랑이다.

300년 12대 지속되었던 부자의 이름을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의 깨우침과 평안을 위해 송두리째 받치며 인근지도자들과의 연합을 주도했던 경주 최부자의 정신을 오늘 위정자들에게 귀뜸하고 싶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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