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인류가 망망대해를 자유롭게 항해하면서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준 나침반을 두고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배의 영혼’이라고까지 칭송했다고 한다. 이는 15세기 이후 프랑스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쌓음으로써 당시의 다른 유럽국가처럼 제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 나침반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통계를 두고서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앞으로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도 같다고 한다. 과거의 나침반이 그랬듯이 오늘날 통계도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OECD에서도 데이터와 이를 토대로 한 정책결정 즉, 증거기반 정책결정(Evidence-Based policy Making)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뢰할 만한 기본 데이터를 모으고 생성하여, 표준화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증거로 데이터를 변환함으로써 정책결정 과정에서 참여자가 이해하기 쉽고, 신뢰할 수 있으며, 시의적절한 증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를 공유함과 동시에 관련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증거를 확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정책 의사결정은 신뢰 가능한 데이터와 통계 및 이것들이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이 사회 전반에 공유되어 사실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고용이나 소득 관련 통계를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국내 주요 정책 의사결정들이 이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통계가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증거에 대한 믿음보다는 어느 한쪽의 편협한 해석이나, 아예 특정 의지를 관철하고자 하는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는 우려가 크다는 말이다.

예로 고용 관련 논란은 한쪽에서는 신규 취업자 수가 거의 30만 명에 달하고 고용률도 역대 최고수준으로 고용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4%에 근접한 높은 실업률은 고령화나 고용 환경 개선에 따르는 고용시장 내 노동인구 유입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제조업이나 자영업이 몰려있는 도소매업, 그리고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급감하는 등 우리 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부문의 고용 환경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양쪽의 주장 모두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소득분배 관련 논란은 또 어떤가. 한편에서는 5개로 나눈 모든 소득계층의 소득이 증가해 소득개선을 위한 정책효과가 역대 최고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 통계에 비춰 볼 때 정책효과에 대한 평가를 제외하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은 분기별 최고와 최저 소득계층 간 격차 또한 역대 최대치로 벌어져 소득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또한 관련 통계가 잘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나침반이 늘 남과 북을 가리키듯 신뢰할 수 있는 통계가 보여주는 현상에도 늘 명과 암이 존재하고, 두 가지 현상이 모두 진실이다. 그래서 이를 두고 논의할 때는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판별해서 그렇지 않은 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진실을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가 핵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용이나 소득분배 통계에서 밝은 쪽만 본다면 더 나은 정책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두운 쪽은 그대로 방치되거나 더 어두워질 수 있다. 반대로 어두운 쪽에만 집중한다면 그나마 밝은 쪽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통계학자 발터 크래머의 말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면 앞으로 우리는 전혀 의도치 않은 불행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