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꽃/ 민 영

내 나이 오십이 되기까지/ 어머니는 내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셨다// 꽃보다 붉은 그 노을이/ 아들 몸에 지필지도 모르는/ 사악한 것을 물리쳐준다고/ 봉숭아물을 들여주셨다// 봉숭아야 봉숭아야,/ 장마 그치고 울타리 밑에/ 초롱불 밝힌 봉숭아야!// 무덤에 누워서도 자식 걱정에/ 마른 풀이 자라는/ 어머니는 지금 용인에 계시단다. 

- 시선집 『달밤』 (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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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TV퀴즈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한 젊은이가 부모님을 방청석에 모셔놓고 상금을 받으면 부모님 유럽여행 가는데 보태겠노라 호언까지 하고선 첫 단계 OX문제에서 그만 낙마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임성훈 진행자가 몇 번이고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데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X를 눌렀다. 바로 그 문제의 문제는 ‘봉선화와 봉숭아는 같은 꽃인가?’하는 것이었는데 다른 꽃이라고 대답해버렸던 것이다.

비슷한 경우로 반딧불과 개똥벌레, 미루나무와 사시나무도 마찬가진데 그런 문제 앞에서 어물어물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망신이라고 얼굴 붉힐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는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본 경험이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 옛날 늦여름 살평상에서 흔히 보았던 봉숭아 물들이기에 얽힌 추억과 그리움을 지금 사람들이 느낄 수나 있을까. 나도 오십까지는 아니었어도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봉숭아물을 들일 때 그 옆에 쪼그리고 있으면 새끼손가락에 물을 들여 주시곤 했다.

예로부터 봉숭아 물들이기는 병마를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가 컸다고 한다. 여름철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이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봉숭아물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손톱과 네 짓이긴 꽃잎이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이 돋아난다는 믿음을 이해할까. 봉숭아물은 매니큐어 같은 화려한 원색이 아니다. 손톱에 뜬 초승달과 은은하게 어우러져 애절한 그리움을 덧씌운다. 손끝마다 핏물이 베어 오래 지워지지 않을 그리움이 시인에겐 어머니였다.

그러나 손끝이 닿지 않는 울밑에 선 그리움은 너무나 깊다. 봉숭아 물들이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는 학교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전철 안에서 조잘거리는 한 무리의 어린 여학생들 손톱에는 모두 볼그족족 물이 들어있었다.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기다림과 아날로그적 그리움을 체험해보라는 의미였을까. 나도 얼마 전 ‘소녀상 안착식’때 ‘봉선화 박사’ 만당 이종갑 시인이 마련한 봉선화 물들이기 이벤트에서 엉겁결에 새끼손가락을 맡겼더니 지금은 제법 볼그족족한 손톱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다.

이종갑 시인은 봉선화 추출물을 소금에 접목시킨 기능성 소금인 ‘봉선화소금’을 제조 판매하는 ‘봉선화식품’의 대표이다. 이 대표는 봉선화가 심겨 있는 곳에 독사와 해충들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이를 신안천일염에 접목하면 건강한 소금이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 자신 봉선화와 함께한 열정으로 말기 대장암을 극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 여름은 가고 추억은 잠들지만 그 추억은 다시 깨어날 것이다. 굳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면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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