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두 영웅이 전한 보물의 울림에 적병은 물러가고 단비가 쏟아지네

<26> 만파식적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과 옥대 선물하다

신문왕은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지었다. 감은사지의 일몰 광경.
낭산자락에 신문왕릉이 위치해 있다. 입구 남쪽을 향한 출입문 홍례문이 나 있다.
낭산 남쪽에 신라 31대 신문왕의 릉이 신하처럼 서있는 노송의 경배를 받고 있는 듯한 일몰 즈음의 광경.
현재 이견대에서 능선을 따라 500m 위쪽의 비석에 ‘이견대’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답사객들이 이를 확인하고 있다.
신문왕이 동해에서 만파식적과 옥대를 선물받아 돌아오는 길에 기림사 계곡에서 쉬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옥대의 조각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놓자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고, 그 자리는 연못이 되어 지금까지 용연으로 부르고 있다.
신문왕이 동해에 문무왕의 업적을 기리며 감사하기 위해 세운 감은사. 동서탑과 바닥에 물길이 드나들 수 있는 특이한 건축물 구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주 양북면 대종천 언덕 문무왕릉을 직선으로 바라보는 곳에 지어진 이견대 정자에서 능선을 타고 500m쯤 오르면 펑퍼짐한 언덕이 있다. 이곳이 당시 이견대가 있었던 곳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신라시대 기와 조각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주장을 뒷받침 한다.
신문왕릉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진 호석을 5층으로 쌓아 올려 갑석을 두르고, 봉분이 흘러내리지 않게 지지하는 큰 돌을 받쳐두고 있다. 남쪽의 지지석에는 ‘문(門)’자를 새겨두고 있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동궁과 월지를 지었다. 이 자리에서 신문왕은 즉위식을 하면서 김흠돌의 난을 제압했다. 경주 최고의 야경으로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있는 동궁과 월지의 야경.
신문왕이 동해 가운데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아버지 문무왕을 바라보던 곳 이견대, 최근 정자를 복원해 방문객들이 더위를 피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라 31대 신문왕은 이름이 정명으로 문무왕의 아들이다. 정명은 문무왕이 왕위를 계승하고 6년째 되던 해에 태자로 임명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왕도에 대한 수업을 착실하게 받았다.

신문왕은 문무왕이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와의 외교를 적대 관계에서 다시 우호적인 관계로 전환하는 디딤돌을 놓아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탄탄대로 같았다. 그러나 전쟁 끝이라 곳곳에서 소요가 일어나고 어지러운 시기였다.

왕위를 이어받는 시점에는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그의 아내를 궁궐에서 내치는 등의 내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동해에 이견대, 감은사를 지었다. 감은사 바닥에는 물길을 내어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는 특이한 구조다.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선물로 준 만파식적으로 평화스러운 나라를 다스리게 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 신문왕편 만파식적에서 소개되고 있다.

◆만파식적

제31대 신문대왕의 이름은 정명이고 김씨이다. 신문왕은 신사년(681년) 7월7일 왕위에 오른 후 돌아가신 문무대왕을 위해 동해에 감은사를 지었다.

다음해인 임오년 5월 그믐께였다. 해관인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었다. “동쪽 바다 가운데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 쪽으로 오고 있는데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다닙니다.”

왕은 기이하게 여겨 일관 김춘질을 불러 물었더니 “돌아가신 임금께서 지금 바다용이 되어 이 나라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게다가 33천의 한 아들이신 김유신 공과 같이 나라를 지킬 보배를 내주려 하십니다. 폐하께서 해변으로 가신다면 큰 보배를 얻으실 것입니다”고 했다.

왕은 기뻐하며 그달 7일 가마를 타고 이견대로 가서 그 산을 바라보았다. 산의 모양새가 마치 거북의 머리 같은데 그 위의 대나무 한 그루가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신하가 와서 아뢰자 왕은 감은사에 가서 잤다. 다음날 정오, 대나무가 합쳐 하나가 되자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로 어두워지는데 7일간 이어졌다. 그달 16일에 이르러서야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잠잠해졌다. 왕이 바다를 건너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받쳐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마음으로 큰 보물을 내어놓고 나더러 바치라고 했습니다”고 답했다.

왕은 놀라 기뻐하며 다섯 가지 색깔이 칠해진 비단이며 금과 옥으로 제사를 올렸다. 신하를 시켜 대나무를 잘라 바다에서 나오자 산과 용은 어느덧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서 자고, 17일에 기림사에 이르러 서쪽 시냇가에 머무르며 점심을 먹었다. 태자 이공이 궁궐을 지키다 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와서 경하하였다. 서서히 살펴보더니 왕에게 말했다. “이 옥대의 여러 구멍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구멍 하나를 떼어내 물에 담가 보시지요.”

이에 왼쪽 두 번째 구멍을 시냇물에 담갔더니 곧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시냇물은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용연이라 부르고 있다.

왕은 행차에서 돌아와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지는 것이었다.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고 국보로 보관했다.

◆장인의 목을 베고 만파식적으로 평화를 이루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도 왜구의 침략에 대한 걱정과 함께 김흠돌의 반란 움직임에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고심했다. 결국 김흠돌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했다. 사위가 왕위에 오르면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워낙 조심성이 많았던 문무왕인지라, 그는 아들 신문왕에게 김유신으로부터 전해 받은 신검을 비법과 함께 전수했다. 또 그의 그림자로 움직였던 비밀결사대 조직도 고스란히 넘겼다.

백전노장 김흠돌은 문무왕이 죽자 욕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상주인 태자 정명에게 “왕좌는 오래 비워두면 나라가 불안하니 빨리 즉위식을 해야 합니다”라며 즉위식을 촉구했다. 국상과 즉위식을 겹치게 해 혼란한 틈을 타 반란을 도모하려는 속셈이었다.

정명은 어리지 않았다. 김유신의 신검으로 수련을 거듭하면서 속까지 가득 채워지는 기운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일당백의 실력을 갖춘 결사대를 측근에 두게 되면서 자신감은 배가 되었다.

“좋아요, 즉위식을 거행합시다. 백성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든든한 왕이 되겠다는 맹세를 하는 잔치로 식을 진행하겠습니다”며 정명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정명은 장인 김흠돌 세력의 배후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악했다.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분석해 그들의 향후 계획도 깨알같이 알고 있었다. 즉위식은 그들이 움직이기 쉽게, 겉보기에 알아차리기 쉽지 않게 틈을 마련해 두고, 일당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작전을 치밀하게 세웠다.

정명은 즉위식을 거대한 잔치로 진행했다. 중앙 귀족들은 물론 지방의 수령들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이 자리에서 정명은 신검으로 화려한 검무를 선보였다. 김흠돌뿐 아니라 모든 장군들조차 처음 보는 신묘한 검술이었다. 마지막에 높이 도약하면서 신검을 월지 가운데로 뿌리며 불기둥을 뿜어 올렸다. 이는 비밀결사대에게 내리는 명령의 신호가 되어 김흠돌 일당의 수뇌들 목에서 피 분수가 솟구쳤다. 아연실색하는 김흠돌의 가슴에도 어느새 용포를 걸친 신문왕의 칼끝이 파고들고 있었다.

김흠돌 세력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잡아 가두고,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즉위식에 참여한 대중들을 향해 외쳤다.

“나는 나라의 안위와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 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용서하지 않겠다. 짐은 선왕의 유지를 따라 오로지 백성들의 평화스럽고 행복한 날들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이다.”

즉위식을 마친 신문왕은 백성을 위해 주검까지 바친 아버지의 희생에 감사하며, 장사지낸 동해에 감은사를 지었다. 또 감은사 바닥에는 용으로 화한 아버지가 쉴 수 있도록 따뜻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신문왕이 감은사 상량식을 올린 이듬해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함께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동해 한가운데에서 용오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안쪽은 호수와 같은 잔잔한 물 이랑이 윤슬에 반짝이고 조각배 위에 옥함이 빛을 받아 가끔 번쩍거렸다. 생시 같은 꿈에 놀란 신문왕이 다음날 동해로 행차했다.

감은사 마루에 꿈에 보았던 그 옥함이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옥저와 옥대가 한 쌍으로 있었다. 옥대에는 용 무늬가 돌아가며 살아 움직이는 듯 조각되어 있었다. 피리를 손에 들자마자 향기를 뿜어내며 저절로 입에 닿았다. 피리는 미처 불기도 전에 천상의 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 허리에 두르면 저절로 병이 낫게 될 뿐만 아니라 힘이 생기는 옥대, 불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만파식적, 신라의 보물이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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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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