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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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우신예찬’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1511년에 출간한 책이다. 우신(愚神)이란 바보의 신이다. 우신(moria)의 어머니는 ‘청춘의 신’이고, 아버지는 ‘부유의 신’이다. 우신은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는 우신을 예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교황과 교회 권력자, 왕과 왕족, 귀족들의 행동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풍자했다. 그는 교회의 헛된 권위와 어리석음을 조롱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가 물질적, 육체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순수한 영혼의 문제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 책이 불후의 명작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기 ‘어리석은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신예찬을 읽으며 오늘의 정치와 권력을 생각해본다. 우신이 그러하듯 권력도 ‘도취’와 ‘무지’라는 유모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은 반드시 사람을 취하게 하며 권력을 잡은 자는 무지해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 우신에겐 추종의 신, 향락의 신, 무분별의 신, 방탕의 신, 미식과 수면의 신과 같은 친구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권력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이 책에는 지금 적용해도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구절이 너무나 많다. “냉정한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 걱정을 신들에게 맡겨두고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지혜와 철학은 가난하고 지질한 사람을 만든다. 지혜는 사람을 소심하게 만든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가난과 기아와 헛된 희망 속에서 천대받으며, 각광은 고사하고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광기의 힘이다. 친구들 사이에 우정의 연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광기의 힘이다. 뱀처럼 꿰뚫어 보는 냉철함보다는 에로스의 헤픈 정념이 진정 삶을 유쾌하게 해 주고 사회적 유대관계를 굳게 다져주는 것이다. 달콤한 꿀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음을 달래지 않는다면 어떠한 모임이나 관계도 유쾌하게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는 사려 분별력 있는 사람보다는 광기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광기를 예찬하면서 에라스뮈스는 정치권력 집단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그는 “최고 권력자가 일면 학식이 풍부한 참모들을 중용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심기를 잘 헤아리고 즐겁게 해주는 광대들을 더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아첨은 낙담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둔감해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첨은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고, 노인의 주름을 펴주기도 하고, 조언과 가르침을 칭찬으로 포장하여 왕이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넌지시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첨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꿀이자 양념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 가지려고 하는 자에게 그렇게 맹목적으로 아첨하는 것일까.

에라스뮈스가 주교나 추기경, 교황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참모습은 ‘노동과 헌신’이다. 재물을 탐하고, 기득권 세력이 된 그들에게 에라스뮈스는 이렇게 질타한다. “가난한 사도의 직분을 행하는데 금전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자신을 한 번이라도 뒤돌아본다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예전의 사도들처럼 노동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귀하게 여겨온 정직한 노동, 가족과 이웃을 위한 헌신과 희생, 타인을 향한 연민과 배려 같은 덕목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가?

우신예찬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옛말에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나는 증오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새롭게 고쳐 ‘아,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안녕히! 손뼉 쳐라! 행복 하라! 부어라, 마시라! 나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 오늘의 가진 자와 권력자들도 그들이 과거에 내뱉은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증오한다. 하여 우신이여, 우신이여, 내 술잔을 채워라. 이 풍진 세상 그냥 박수나 치며 취생몽사 할까나.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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