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 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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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먹을 때의 느낌을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는 느낌에 비유한 장옥관 시인의 시가 있었고, 이 시를 읽고 시조시인 이종문이 ‘도저히/ 포도를 이젠/ 모, 모/ 못 먹겠다/ 순하디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으면서 혀로다 눈동자를 골라 내 뱉는 것 같아서’ 라면서 ‘시 한 편 읽은 뒤로’란 제목의 재미난 시를 다시 쓴 바 있다. 야채나 과일 따위의 먹는 음식에서 다른 사물을 연상하는 일은 흔히 있다. 그 사물은 대체로 신체의 특정 부위와 관련이 있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든지 마늘 같은 코와 마찬가지로 잘 빠진 옥수수 ‘상아빛 속살’을 보고 치열 고른 건강 미인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울진 평해가 고향인 시인의 오일장 추억에서 추출한 이 시는 그 비유에 그치지 않고 들쑥날쑥 성근 이조차 간수하지 못하고 합죽한 ‘쭈그렁 노파’와 까르륵 웃어재낄 때면 상아빛 이빨 반짝이고 날 종아리 눈부신 ‘처녀애들’의 극명한 교차와 대비를 통해 잠시 생을 흥정하고 계산한다. 물론 할머니도 한때는 ‘뽀얀 옥수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내내 그리 살 수는 없는 것. 잠시 ‘예전 입맛’을 계산하지만 그들이 얄밉지는 않다. 부러운 청춘들이다. 하지만 모락모락 김나는 찰옥수수의 건강한 치열 같은 그 빛나는 시간들이 마냥 이어질 수는 없으리라. 그들 또한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뭉개져나갈 것이다.
할머니는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건강하고 눈이 부실 때 ‘꽉 차서 더 찰진’ 시간을 마음껏 누리라는 무언의 덕담을 덤으로 얹어 찰옥수수를 건넨다. 어제 50년 지기인 옛 친구들 몇과 어울려 오랜만에 술추렴을 했다. 지금은 다들 건강 때문에 예전의 그 주량이 어림없는데다가 술맛도 예전 같지 않다. 만나서 4시간 남짓 시종일관 나누었던 잡담의 5할이 국내정치였고 나머지 5할이 건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 상당부분을 치과 부문에 할애했다. 친구 가운데 ‘돌팔이’ 치과의사 하나가 포함되어서이기도 했지만, 다섯 명 전부 임플란트를 몇 대씩 했거나 부분틀니를 한 처지였기 때문이리라. ‘이빨 빠진 호랑이’들이 흘러간 ‘뽀얀 옥수수 시간들’을 잠시 회억하는 누추한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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