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었다고 말하지 마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국회의 인사청문회 개최가 불투명하자 셀프 무제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준비 되지 않은 기자들은 의혹투성이 조 후보자에게 변명 기회만 준 꼴이 됐으니 결국은 조 후보자 페이스에 말려든 셈이다. 질문 내용이 대부분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 거론된 사실들을 확인하는 수준인데다 기자들의 반복적이고 줄기찬 부적격 자격 자질 공격은 노회한 법학자의 혓바닥에 한국 언론의 한심한 수준만 보여준 꼴이 됐다. 하긴 자료 요청 권한도 법적 수사권도 없는 기자의 한계야 있지만 그렇다고 기본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덤벼들어 “네 죄를 알렸다”는 원님 재판식으로는 후보자를 끌어내리기에 역부족이었다.

여론이 아무리 나쁘고 국민 정서가 아무리 조국 반대라 하더라도 “이런 정도로, 이러고도 장관을 하겠다고 버티느냐”며 내미는 결정적 한 방이 끝내 터지지 않아 아쉬웠다. 11시간의 공세는 그나마 ‘진짜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준비 안 된 언론의 판정패였다.

정치권에 시한폭탄이 던져졌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여야 4당 합의 선거제 개혁안이 지난달 29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결돼 패스트트랙 첫 관문을 넘어선 것이다.

선거제 개혁안은 이제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90일과 본회의 부의, 상정을 거쳐 표결에 부쳐진다. 이론적으로는 오는 11월 27일 본회의 표결이 가능하다.

선거법 개정 협상이 언제부터였나. 그때도 그랬다. 왜 충분히 논의도 하지 않고 이렇게 억지로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느냐며 동물국회를 만들었다. 그럼 그동안 논의하자고 할 때는 왜 하지 않고 계속 딴전만 피웠잖아. 그래놓고 지금에 와서 왜 갑자기 그러느냐고, 시간이 없다고 그런다.

이대로가 좋다. 변화는 불편하다. 더구나 내 몫을 내놓는 변화라니, 막을 수 있는 데까지 거부하고 보는 거다. 그거 차지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걸 쉽게 내놓는다는 말인가. 지금 누가 득을 보고 법을 바꾸면 누가 손해보고 누가 이득을 보게 되나. 그걸 국민의 입장에서 헤아려야 한다. 더 많은 국민이 이득이 되는 쪽으로 법을 바꿔야 한다. 기득권이 붙잡고 내놓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의 이익인가, 그들만의 이익인가. 국민들은 제대로 알고나 있는가.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되고 선거구가 개편되면 당장 지역구 국회의원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 때는 지역구에 따라 현역 의원들 간에도 공천 경쟁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들의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구 국회의원 숫자가 줄어들고 현역 의원들끼리 공천경쟁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국민들이 동정심을 갖고 지역구 의석수를 현재대로, 또는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노숙자가 호화주택의 소득세를 걱정하는 꼴이나 진배없다.

그들의 기득권 누리기에 당연하다거나 혹 동정심을 보인다면 또 다른 조국을 용인하는 것이다. 국민 누구나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에서 당선되면 맡는 것이지 특정인이 재선 삼선 하고 기득권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거구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면 된다. 모두 당선되거나 모두가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왜 필요하고 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곡절 끝에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됐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오래 준비했으니 하루지만 의혹을 말끔히 씻을 수 있는 한 방을 기대한다. 국회의원으로서 기자들과 다른 권한도 가졌으니 정말 장관감인지를 조국이 아닌 국민의 편에서 판정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선거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시간 없다고 말하지 마라. 선거법을 바꾸든 지키든 지금부터라도 충분한 논의하라는 거다.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아닌, 국민의 편에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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