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원림 칠곡 심원정, 보존 대책 시급

발행일 2019-09-08 15:39:2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 논설위원

팔공산 남서쪽 자락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 송림사 앞 계곡 한 쪽에 자리한 심원정(心遠亭)은 작은 원림(園林)이다. 송림사 일주문을 마주한 도로변의 숲과 건물에 가려져 있어 심원정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은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다.

심원정은 일제 강점기인 1937년 기헌 조병선(1873∼1956) 선생이 만년에 이곳 주변을 다듬고 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심원정은 주변의 자연과 지형을 잘 살린 별서정원으로 조성돼 일제 강점기 때 선비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소가 됐다. 8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심원정은 전체 면적이 2천378㎡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지만 누정(樓亭)문화가 발달한 영남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대표적인 원림으로 꼽힌다. 비록 근대에 지은 정자지만 영남지방에서는 이만한 원림의 형태와 별서정원의 의미를 갖춘 곳이 없어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원림은 보길도의 세연정과 담양의 소쇄원 등이 있으나 영남지방에는 예천 초간정과 봉화 청암정, 영양 서석지를 제외하면 이렇다할만한 원림은 찾기 어렵다.

-근대 조성된 원림, 세계기념물 감시 대상돼

심원정의 이름은 도연명의 시 ‘음주(飮酒)’ 중에 ‘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마음이 욕심에서 멀어지면 사는 곳 또한 저절로 외딴 곳이 된다)’에서 따왔다.

심원정은 경사지에 터를 닦아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T자형 건물을 세운 뒤 그 주변에 토석담을 둘러 정자를 조성했다. 정자 주변에 인공 연못과 숲도 만들었다.

정자에는 이열당, 위류제, 정운루, 암수실 등 공간을 마련해 조병선 선생이 기거하고 손님들이 머물 수 있도록 했다. 조병선은 인공으로 조성한 성석과 군자소, 동취병, 은폭, 천광교 등 11곳과 지주암, 서대, 동반, 은병 등 자연 지형 9곳에 이름을 붙이고 심원정 25영이라는 시를 지었다. 편액과 석비 등 25가지 유산도 전해진다.

심원정은 근대에 조성된 원림이라는 특별한 가치와 함께 원림 곳곳에 조성된 인공물 등이 당시 유학자의 세계관 및 우주관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조병선은 오랜 기간 송림사에 시주하고 도덕암 중수기를 작성하는 등 불교와 인연이 깊었다. 그래서 심원정은 유교와 불교의 공존 가치를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심원정이 퇴락하고 훼손되고 있다. 심원정 입구에는 현재 조병선의 손자인 조호현(58·기헌선생기념사업회 사무국장)씨가 거처하면서 관리하는 판넬 건물이 있고 바로 옆에 문을 닫은 식당 건물이 빛바랜 매매 안내문을 내건 채 볼썽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

-관리 소홀로 퇴락, 지자체서 매입해 정비해야

식당 건물은 조씨의 어머니가 장사를 하던 곳으로 현재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있다. 이처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것은 심원정이 무허가 건물인 때문이다. 토지가 조계종 산하인 송림사 소유로 돼 있는 탓이다. 심원정은 조병선이 당시 송림사 땅과 자신의 땅을 맞교환해 건립했지만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문서가 소실돼 이를 증명할 수 없게 됐다. 현재는 기헌선생기념사업회가 송림사에 임대료를 내고 심원정을 유지하고 있다. 토지 소유권이 정리되지 않아 문화재 등록을 못 하고 있다. 문화재로 등록하려면 지상권을 인증받거나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 송림사측은 지상권 인증이나 매매는 조계종 본사와 합의해 결정할 문제라며 한 발자국 물러 서 있다.

기념사업회는 관리가 여의치 않자 지난 2015년 심원정을 문화유산 보호단체인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 기증했다. 문화유산 보전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인 세계기념물기금(WMF)은 한국 최초로 심원정을 2016년도 세계기념물감시 50곳 중 한 곳으로 선정했다. 그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기념사업회는 심원정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고 고택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심원정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보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땅을 지자체서 매입해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경북도와 칠곡군이 내셔널트러스트, 송림사 등 관계자와 협의해 소유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심원정의 본 모습을 살리고 주변 경관도 정비해 관람객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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