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권선희

발행일 2019-09-11 14:20: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추석 / 권선희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금마 맨키로 훤하이 쪼매 글네/ 야야, 지금은 어데 가가 산다 카드노/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바다 볼 낯빤디기나 있겠노 말이다/ 가가 말이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다/ 막말로 소가지 빈 천사였다 아이가/ 그라믄 뭐 하겄노/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인자 돌아 올 길 마캐 일카삣다 아이가/ 우찌 사는지럴/ 대구빠리 눕힐 바닥은 있는지럴/ 내사 마 달이 저래 둥그스름 떠오르믄/ 희안하재, 금마가 아슴아슴 하데이/ 우짜든동 처묵고는 사이 읍는 기겠재?/ 글캤재?

-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애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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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얼까? 고향, 가족친지, 둥근달, 송편, 황금들녘, 성묘, 차례, 한복, 선물 그리고 고된 노동, 처량함, 귀성길 정체, 용돈, 고스톱, 추석 특선영화. 요즘은 긴 연휴와 해외여행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환한 둥근 달은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총체적으로 대변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나 사람을 떠나보내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의 초점이 둥근달로 모인다. 가만 달의 숨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없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설렘이고 고향땅 부모이며 지상에 부재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살아계신 고향의 부모로서는 달려올 자식들에 대한 기다림이리라. 시에서 ‘금마’는 경상도에서 3인칭 남성을 칭하는 대명사다. 비록 가족은 아닐지라도 화자에게는 피붙이나 다름없는 친숙했던 이웃인 것 같다. ‘본디 인간으로는 참말로 좋았’던 아이가 ‘그 노무 다방 가스나 하나 잘못 만나가 신세 조지 삐고’ ‘마눌 자슥 다 내뿔고 갔으이’ 고향 들여다볼 낯짝이나 있을까 연민한다. 그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처묵고는 사이’ 소식 없는 것이라 애써 위안한다. 이제 이 땅의 모든 순한 길은 그 고향을 향한 설렘과 그리움의 등불로 환해졌다. 지금은 비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지만 보름달을 볼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양쪽 부모 다 계시고 고향의 정경이 고스란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날갯죽지 다 찢겨나가고 고향 또한 낯선 객지가 되어버린 이도 있으리라. ‘금마’도 돌아올 길을 잃어버린 날개 잃은 천사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간직된 고향의 원형이야 달라지랴. 다만 부모가 아무도 안 계시거나 가고 싶어도 찾아갈 형편이 못 되는 이에겐 둥근달이 내내 심란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 빚던 어린 시절의 고향이 지금은 너무 아스라이 있다. 어머니가 개시로 내 입에 가장 먼저 넣어주었던 그 송편 맛은 잊을 수 없다. 하늘보다 내 마음에 서둘러 먼저 뜬 둥근달이 그리운 얼굴들과 포개어진다.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없는 이웃의 얼굴들과 고단한 현실로 작아지고 모난 마음의 한 구석도 본다. 저 달빛에 젖은 마음의 꽃가지가 휘면서 까닭 모를 눈물이 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절망을 떠올리며 부모님께 다 하지 못한 도리를 생각한다. 자식들에게 태만했던 지난날의 회한도 불쑥 치밀어 오른다. 거처를 옮기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혼자 조용히 보낼까했는데 ‘뜻밖’에 작은애가 올라온단다. 내 집에서는 평시에도 달이 훤히 잘 보이는 편이다. ‘아고야, 무신 달이 저래 떴노’ 나도 작은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삭혀진 그리움도 소환하여 되살려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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