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

발행일 2019-09-17 16:12:1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왜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나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동물들이 드디어 혁명을 일으켰다. 인간 농장주인으로부터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동물들이었다. 마침내 동물들은 인간 주인을 몰아내고 자기들이 직접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동물들은 혁명을 이끈 ‘나폴레옹’과 ‘스노볼’이라는 돼지 두 마리를 지도자로 삼았다. 이들은 혁명 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등의 7계명을 헛간 벽에 적어두고 초심을 다졌다. 일요일마다 회의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갈수록 돼지집단 내부의 권력투쟁과 부정부패라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 특권층 돼지들은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계명을 무시하고 술을 마시고, 자녀들을 위해 전용 고급 교실을 짓는 등 자신들이 혁명의 구실로 삼았던 ‘적폐’들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고서는 다른 동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동물도 저항하지도, 비판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동물들은 폭력과 노동착취, 복종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몰려 숙청되기 때문이었다.

조지오웰이 1945년 발표한 소설 ‘동물농장’의 일부 내용이다.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유토피아’를 내건 공산주의 독재가 타락해 가는 과정을 풍자한 소설이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섬뜩함을 느낀다. 그 당시 소설 속의 상황과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똑같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웠다. 발표된 지 70년이 넘은 이 소설의 내용이 왜 하필 현재 한국의 상황과 똑같은지. 그렇다면 소설 동물농장이 주는 교훈은 당시나 현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먼저 소수 엘리트 권력층의 부패는 그들만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지배층인 돼지가 가장 먼저 챙겼던 특권은 사과를 슬쩍 가져가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일반 대중인 다른 동물들이 이들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감시하고 제지했더라면 돼지들의 지도자 나폴레옹이 독재자로 변해가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배당하는 동물들은 그러지를 못했다. 그들의 무지와 무기력이 결국은 권력의 타락을 불러온 것이었다.

권력을 잡은 머리 좋은 돼지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진실을 철저하게 억압했다. 이들 사회의 이상이 집약된 율법인 7계명을 먼저 무시하고 모른 체하는 뻔뻔함도 나타났다. 심지어 애초의 동물 7계명이 조작되고 부정되어도 어느 누구도 이를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다. 특정 계층은 대중을 기만하면서 거짓과 조작이 진실을 덮었다. 그 속에서 동물들은 굴종과 복종에 익숙해져 갔고 무기력해져만 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동물은 무조건 적으로 모는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숙청되거나 즉석에서 처형됐다. 급기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은 어느새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평등은 말뿐이었고 철저히 계급사회로 이뤄진 독재체제로 변해버린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은 과거 러시아혁명에 관한 우화이다. 그러나 당시와 똑같은 사건들이 현재의 사회, 현재의 정치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AFP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초, 빅 브라더가 당원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그린 조지 오웰의 또 다른 소설 ‘1984’의 판매가 무려 95배나 폭증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서도 이 소설의 판매가 165% 늘어났다. 이같은 오웰의 소설 재출간 붐은 현재 사회가 ‘1984년의 동물농장’이어서가 아닐까.

한국은 어떤가. 정권은 바뀌고 있지만 부정부패와 부조리, 편법은 여전하다. 동물농장을 읽고 좌절하는 건 그래서다. 과연 누가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 슬픈 건 ‘동물농장’은 1945년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래세계에서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풍자하는 우화는 세계 곳곳의 삶의 모습을 담은 현재의 축소판이다. 소설 속 지도자 돼지 나폴레옹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럴싸한 논리에 현혹된 대중들이 경계를 늦추는 순간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소설 동물농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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