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 이승훈

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밤이 있지 어제도 거실에서 술 마시다 말고 스님처럼 머리 빡빡 밀고 싶어 화장실 들어가 거울보고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 중얼대고 나왔지 어느 날 머리 빡빡 깎고 집에 오면 아내는 내가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하겠지

- 계간 《시작》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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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이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비구니 연기를 위해 머리칼을 싹둑 잘라내 화제가 된 게 꼭 30년 전이다. 당시엔 그 삭발로 인해 2년간 다른 작품을 출연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배우에겐 큰 부담이었다. 이후 수많은 배우들이 머리를 밀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위한 삭발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할 만큼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연기와 상관없이 연예인들 사이에선 헤어 패션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트렌드가 되었다. 탈모를 숨기기 위해서, 흰머리 염색이 성가셔서, 비듬이 많아서,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이 흉해서 아예 밀어버리기도 한다.

그날이 그날인 반복적이고 무료한 일상에서 뭔가 변화를 주기 위해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별다른 까닭 없이도 머리를 빡빡 깎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다. 자잘한 일상의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님처럼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는 것이다. 문득 ‘검은 머리칼이 아귀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자아 충동인 것이다. 과거엔 여자들이 머리를 자르기만 해도 실연했냐는 소리를 들었다.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깨달음이 피안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피안은 불교용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말한다.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경지를 이른다. 누군가에게도 그 삭발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길일까. 그러나 대개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자신도 변하지 않을뿐더러 세상도 바뀌지 않아 삶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더 많다. ‘그래 빙판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거야’ 결기를 다지며 머리를 깎아도 돌아오는 것은 세상의 빈정거림이다. 스님 될 것도 아니고 군대 갈 것도 아니면서 머리는 왜 미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아내조차 ‘이젠 완전히 미쳤다고’ 그런다.

누구를 위한 삭발들인가. 세상을 구제하지도 못하고, 그 ‘빙판’위에서 스스로 영혼의 스케이팅을 즐길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머리카락을 갖고 왜 장난질을 치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머리카락 수는 보통 10만개, 하루 빠지는 머리카락 수는 100가닥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은 심각하게 염려할 정도는 아닌데 나도 매일 바닥에 부려진 머리카락의 잔해를 닦아내는 게 일이다. 가만히 두어도 머리카락은 매일 사라진다. 머리카락은 외부의 충격과 태양 광선으로 부터 두피를 보호한다. 10만 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으면 5톤 트럭도 끌 수 있다고 한다.

머리카락은 대부분 문화권에서 생명의 분신이자 힘의 상징으로 여겼다. 성서에 나오는 삼손은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잃었으며,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단어 ‘카이사르’도 머리털이 긴 남자를 뜻한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도 머리를 깎거나 깎인 사람은 한동안 일상생활을 못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터럭 한 올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여겨 빠진 머리칼도 따로 모아 두었다. 삭발하는 정치인 자신들이야 각별한 저항의 상징과 지지자들의 결집을 목적으로 미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 평범한 시각으로는 ‘피안’은커녕 ‘쇼’ 이상의 의미를 보지 못하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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