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뻔뻔하게 살고 싶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귀인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장자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바퀴 자국에 갇힌 붕어 우화가 그런 것이다. 강물을 끌어 오는 수고 보다 지금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 아닌가.

병상에서 10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하는 처지에서도 신체의 생체 시계는 여전히 가동됐다. 참으로 참기 힘든 것은 소변 욕구였다. 아랫배는 탱탱하게 팽창되고 방광은 이미 용량을 초과한 지 오래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소변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또렷해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랫도리는 내 몸이 아닌 듯 전혀 감각이 없었다.

실례하겠다며 내 배 위에 올라앉은 간호사는 능숙한 솜씨로 내 아랫배를 주무르면서 “편안히 계시면 됩니다” 하고 나를 안심시켰다. 한 참 있으니 그의 말처럼 편안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또 통쾌하기까지 하다니. 고마웠다. 보수를 받고 일하는 직업이라지만, 이렇게 누구의 불편함과 고통을 해결해서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니 직업 치고는 정말 좋은 직업 같다.

고마운 사람을 여러 번 만났지만 다시 잊지 못할 고마움이었다. 덕분에 배뇨의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장면을 TV에서 봤다. 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인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가족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조 후보자를 장관에 임명했다. 일전 불사의 결의를 만천하에 공표한 셈이다.

아니, 대통령님. 법 위반 사항은 형사법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런 문제라면 장관 후보자로 추천할 때 죄다 걸렀을 것 아닙니까? 지금 국민들이 실정법 위반을 따지는 겁니까? 국무위원 후보자가 실정법 위반이면 이건 아예 후보 예비 ‘풀’에도 못 끼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청와대 인사 시스템은 뭐 하는 겁니까?

조국 장관의 교수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시절 보수 진영이나 기성세대를 향해 날리던 예리한 어퍼컷들이 하나 둘 새겨졌다. 이제 그는 인사 청문 대상자의 비도덕성이나 위법으로 인한 사정당국의 혐의만으로도 사퇴했던 수많은 후보자들을 기억했어야 했다.

있는 집안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박사에 모교 교수라니, 학벌에다 부와 권력까지 모두 가진 사람이 자기 말처럼 진보적 사상을 갖고 있었으니 강남좌파 엘리트가 도덕성과 공정성으로 보수 우파 공격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사실은 기득권을 향유했고 이용했음이 들통 난 것이다.

자녀 교육과 가정 관리에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속물이었는데 억지로 감춰온 위선의 민낯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다. 거기에다 재직했던 서울대에는 제자들의 비난에도 사표 대신 휴직계를 내는, 장관직 이후의 교수직까지 보장 받겠다는, 양 손에 떡을 움켜 쥔 그의 치졸한 욕심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마치 얼굴 예쁜 여자아이가 공부도 잘 하는데다 집안도 좋아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다 마음씨까지 고왔으니 주위의 시샘을 넘어 또래의 우상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굴도 병원에서 뜯어고친 성형미인이었고 성적은 편법과 특혜로 만들어진 성과임이 들통 난 꼴이었다.

그런 조국 장관의 뻔뻔함은 보통 사람은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맷집이다. 말로만 “성찰하겠다”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겠다” “미안하다” 말고 그렇게 반성하면 내려와야지. 장관직을 끝내 버티는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자신만이 검찰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는 권력욕을 사명감이라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권력을 잡고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오만함보다 목마른 붕어에게 한 바가지 물을 주는 조국이었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소변 한 번 보게 해 주는 그런 시원함을 말이다. 지금 국민들은 조국 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에 기득권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대던 자신의 트윗처럼 산뜻한 도덕적 처신을 기다린다.

나도 저렇게 뻔뻔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날 까 두렵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