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 하덕규 목사의 삶과 노래

신영

재미 시인·칼럼니스트



지난 여름의 날. 토요일과 일요일에 North Andover 소재 다문화 선교교회에서 ‘시인과 촌장’으로 알려졌던 음유시인 ‘가시나무’ 작시·작곡자인 하덕규 목사를 초청한 간증집회가 있었다. 가시나무 노랫말이 좋아 꼭 참석하고 싶다. 행사를 앞두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조용한 가운데 차분한 목소리의 하덕규 목사의 인사가 있었다.

하덕규 목사의 노랫말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그는 첫 노래 사랑해요라고 쓴다를 선사했다. 이 노래의 노랫말도 곱지만,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얘기들을 보석처럼 꺼내어 모두에게 나눠주는 듯 했다. 시절이 어려울 때라 삶이 고달프지만, 어린아이들의 천진스러운 웃음과 눈망울 속 말간 세상을 본 것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이마에도 ‘사랑해요’라고 쓰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그네의 늘어진 어깨에도 ‘사랑해요’라고 쓴다고 말이다. 동시처럼 맑고 청아한 짤막한 시어들 속 깊은 여운은 가슴 속 깊은 영혼의 샘터에 동심원을 그리며 며칠을 내 속에 머물러 나를 울렁이게 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작은 기타 음으로 시작되는 ‘가시나무’의 노래 첫 가사이다. 가끔 이 노래의 제목이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들었던 노래이다. 물론 미국에 살았던 내게 그 노래를 그리 접할 기회가 없었지만 15여 년 전쯤이었을까 싶다. 한국을 방문해 ‘명상테라피’ 그룹에 참여해 며칠 공부를 할 때였다. 그 수업 시작의 날과 끝나는 날까지 이 ‘가시나무’ 노래를 수 십번 들려주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더욱이 ‘가시나무’ 노랫말에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내 영혼 깊이 박힌 영혼의 숲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하덕규 목사는 이날 기타와 연주 노래와 찬양 간증 집회에서 ‘가시나무’를 쓰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 내 속이 너무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고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내 안의 죄성을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괴로움을 밖에 있는 숲을 보면서 그리고 내 안을 보면서 깊은 생각과 마주했다고 한다.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가시나무와 같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가시에 찔리면서 가시를 뽑아주시고 끝까지 품어주셨다”고 했다. 내 안의 ‘죄성’이 바로 ‘가시’라는 말과 함께서다.

‘가시나무’ 노래는 가시나무 덩굴 속 피 흘리고 계신 예수님이 떠올라 곡을 쓰기 시작한 지 30분 안에 곡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곡을 내게 주셨다.”고 간증하는 것이다. 노랫말이 어찌나 좋던지 간증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가시나무’ 노래를 다시 찾아 들었다. 그리고 하 목사는 9년 전 ‘위암’ 진단을 받았는데, 믿기지 않았지만 2~3기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의 진단을 받고 온 남편에게 묻는 아내에게 “내가 암이래”라고 얘기를 했더니 펑펑 울더란다. 우는 아내를 다독이며 몇 년만 투병하면 괜찮을 거라고 달래주었다고 한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의 것들을 너무 많이 사랑했다.”고 그는 간증한다. 그저 ‘선물’만을 기다리고 좋아했다고 말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보다는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선물만 좋아했다고 말이다. 하 목사의 간증은 나와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자신을 위해 필요에 따라 치장하는 악세서리처럼 여기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귀한 간증을 통해 내 속의 깊은 나를 들여다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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