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상 최서진

발바닥 굳은살을 감추며 살았다. 땅에 발붙이려고 맨바닥에 발 비비며 살다 보니 발밑에 죽은 살들만 남모르게 쌓여갔다. 혹여나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안쓰러워할까 나는 어디 가서도 함부로 신발도 양말도 벗지 않았다. 각질처럼 나가떨어지지 않고 지난 세월에 말라붙어버린 살들. 매일 밤 그 죽은 살을 도려낼 때마다 마음속에 흉터가 하나씩 늘었다.

바람이 꽃비를 흩어지게 하는 날에 홀로 영산암(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26호)을 찾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산사, 봉정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암자였다. 꽃비 내리는 누각, 영산암의 출입문 우화루를 허리 숙여 통과했다. 그 짧은 문을 통과하는 동안 입가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내게 꽃비 내리는 인생이란 없을 것이다. 사업에 실패한 언니를 대신해 빚을 짊어졌다.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하루하루가 세찬 비바람 속을 걷는 나날이었다.

우화루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좁은 아랫마당이 나온다. 정면에는 중간마당으로 올라가는 다듬지 않은 돌계단이 있다. 계단을 오르자 굳은살 때문에 발바닥에 통증이 일었다. 두꺼운 양말에 등산용 신발을 신었는데도 죽은 살이 배겨왔다. 그 아픔이 몇 개 안 되는 돌계단을 디뎌서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촉감은 발이 닿는 곳마다 뾰족한 돌들이 솟아난 비포장도로를 홀로 걷는 일과 비슷해졌다. 굳은살은 점점 두꺼워졌다.

중간마당에 올라서니 영산암(靈山庵)의 ㅁ자형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따라온 늦가을 바람이 여기저기 부딪히며 이곳을 소개했다. 마당 좌우에는 요사채로 쓰이는 송암당과 관심당이, 윗마당에는 주 불전인 응진전 뒤로 삼성각, 염화실 등이 가람 배치됐다. 활짝 열린 응진전 만살분합 문 안으로 불상 세 개가 보였다. 나는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실내를 둘러봤다. 16나한상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훔쳐보듯 보고 뒤돌아 서버렸다. 가진 것이 없어 매일 살을 도려내며 사는 내게는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물어볼 것도 빌 것도 없었다. 신이 난 바람과 달리 나는 마음이 금세 시들해졌다. 발이 아팠기 때문이다. 돌아서서 윗마당에서 내려오려는 그때 특이한 건축양식, 아니 삶의 길과 마주했다.

마루였다.

영산암은 독특하게도 건물 3채가 마루로 이어져 있었다. 우화루의 이층대청을 중심으로 중단 좌우에 배치된 송암당과 관심당의 툇마루와 쪽마루가 수평을 이루며 연결돼 있었다. 쉽게 말해 ㅁ자형 공간배치에서 ㄷ자형 건물이 마루로 이어졌다. 그 자연스러운 이어짐은 하나의 길처럼 보였다. 아니다. 그것은 진짜로 길이었다.

좁게 뻗은 골목길을 닮은 관심당의 쪽마루는 그 길 위에서 온종일 종종걸음으로 사는 우리네 일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 마루를 보자 나는 부끄러워졌다. 길 끝에는 부처가 꽃비를 맞으며 범천왕에게 설법했다는 장소 영산회상을 표현한 우화루의 이층대청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아까 거짓말을 했다. 부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이곳을 찾았다는 걸 말하지 못했다. 부처는 설법을 청하는 범천왕에게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고 했던가. 나는 쪽마루에 걸터앉아 영산회상을 바라봤다. 이내 쪽마루는 삶을 마주하는 길이 되었다. 곱게 뻗은 장마루로 만들어진 쪽마루를 손바닥으로 가만 쓸어보았다. 거짓된 삶으로 지금의 불행을 피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물음과 되물음의 시간이 고요히 지나갔다. 그 시차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 바로 기다림이다. 그래서 쪽마루는 기다림의 길이 된다.

그 길이 영산회상으로 통하고 있었다. 지금 내 삶의 길은 쪽마루를 닮아야 한다. 올곧게 뻗은 길 위에서 궂은 날씨가 멈추길 기다리면서 무릎을 세우고 똑바로 앞을 보며 걷는 것, 지금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의 모습이다. 문득 언젠가는 꽃비를 맞는 날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 송암당 툇마루를 바라봤다. 그 마루를 보자 나는 고마워졌다. 툇마루에는 기댈 수 있는 평주가 있었다. 툇마루는 힘들면 잠시 쉬었다 걷는 것도 삶의 지혜임을 알려주는 길이었다. 어느새 나는 평주에 기대 눈치 보지 않고 무거운 신발을 벗고 마루 위에 다리를 올렸다. 편히 쉬면서 나는 영산암이 내 앞에 펼쳐 보인 살길을 마주했다. 어떻게 인생길에 쪽마루만 있겠는가. 지금은 여유 없는 좁은 인생길을 걷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쉼이 있는 넉넉한 툇마루 길을 걸을 날도 찾아올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게 분명하다. 툇마루의 넉넉함은 사람을 마음에 품게 해주기 때문이다. 빚을 짊어진 이후부터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기다린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주기를. 나와 함께 걸어주기를 길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툇마루는 만남의 길이 된다.

발바닥 통증이 가라앉았다. 양말을 벗을 용기가 생겼다. 두꺼운 굳은살이 박인 발이 드러났다. 조심스레 발바닥을 마루에 비벼보았다. 햇살에 달구어진 나무의 촉촉한 질감이 느껴졌다. 죽은 살이 아니었다. 굳은살은 지금 이 순간 삶을 생생히 느끼고 있는 살아있는 살이었다. 그제야 나는 영산암 마루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굳은살, 기다림, 만남, 이 모든 것은 삶의 부딪침에서 나온다. 좁은 쪽마루에서는 몸과 몸이 부딪친다. 이는 삶에 부딪힘과도 같다. 그 길에서 우리는 부딪쳐 오는 서로의 삶을 맞이하며 상대가 건너편으로 먼저 건너가길 기다린다. 자신에게 이 좁은 길을 통과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툇마루는 어깨를 살짝살짝 부딪치며 나란히 함께 걷는 인생길이다. 그렇게 때로는 기다리면서, 때로는 함께 걸으면서 인생길을 올라가야만 대청이라는 꽃처럼 활짝 벌어진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 넓은 길에서는 자신의 맨발을 주무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서로의 굳은살을 보며 위로와 격려의 눈물을 흘려줄 수 있다. 그렇다. 영산암 마루길은 부처의 맨발이었다. 인생이란 부처의 맨발이라는 굳은살을 신발 삼아 걷는 일이다.

나는 맨발로 관심당 쪽마루 위에 올라섰다. 부처의 맨발이 포개졌다. 삶의 흉터들 위로 꽃들이 피어났다. 우화루를 향해 천천히 몇 발자국 걸어보았다. 부처가 나와 함께 걸었다. 두꺼운 굳은살을 뚫고 살아있음의 기쁨이 전해졌다. 왠지 꽃 같은 날이었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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