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미용실에 다녀왔다. 한 중년여성이 헤어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는 각종 부동산 이야기로 꽃을 피우더니 교육문제로 옮겨 붙었다.

“요즘엔 대입 원서를 학교에서 쓰지 않는다. 학종은 전략이 필요해 외부 전문가에게 돈을 내고 원서를 맡겨야 하는데 작년 고3 아들의 수시 원서를 맡겼더니 서울 3개 대학 중 2개에 합격했다. 수시원서만 쓰는 전문가는 뭐라도 달랐다” ….

그러면서 아니나 다를까.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이야기로 이어졌다.

“있는 사람들은 저들 알아서 상장도 만들고 인턴도 했다가 논문도 쓰는 세상이다. 부모가 스펙을 만들어주고 좋은 대학까지 보내지 않느냐. 차라리 예전처럼 수능으로 대학가는 게 가장 공평한거 아니냐” 등등의 이야기에 서로 공감하는 모습이다.

토론은 정시 확대를 바라는 의견으로 마무리됐다. 공부시켜 대학 보내는 게 가장 공정하다는 이야기다.

그들만의 생각일까. 많은 학부모들이 저들의 이야기처럼 차라리 정시로 대학을 보내야 한다고 외치진 않을까.

‘조국사태’로 시작된 학종 논란이 정시 확대로 옮겨붙고 있다. 정치권에선 특별전형과 수시를 폐지하고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정시 확대로 이어지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여론을 등에 업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정시라는 제도는 수능 성적으로 학생들을 1등부터 줄 세워 성적대로 잘라낸다. 오지선다형 문제를 가장 잘 푼 학생에게 ‘수재’라는 수식을 붙인다. 100점 맞은 학생은 인재가 되고 문제를 많이 틀린 학생은 낙제의 덫에 빠진다.

학교 교육도 많은 문제를 맞히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 문제를 잘 푸는 요령을 익히고 갖가지 유형에서 도출될 수 있는 답을 찾아내는 숙련된 문제푸는 기술자를 만든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정시는 사교육을 많이 받는 학생에게 유리하다. 재수생들이 정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책상에 오래 붙어 많은 내용을 외우고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문제를 잘 푸느냐의 승부로까지 비약되기도 한다.

입시 결과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교육이 과연 이러한가.

아이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은 정시 틀 속에서는 꺼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가치나 비전을 따져보기에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로 수시제도가 나왔고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수시가 특권층의 편법이나 권력에 활용되면서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조국사태’로 확인했다. 대다수 평범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느끼는 박탈감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시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도 이런말을 했다. “학종도 문제 있지만 수능은 오지선다형으로 미래 역량을 측정할 수 없고, 재수·삼수나 돈을 들이면 점수를 따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다”고. 수능 중심의 정시 확대 여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다.

대통령이 대입 제도 개선을 주문하고 교육부는 공정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입시제도를 손보고 있다. 학종 비율이 높은 대학의 입시 실태도 들여보는 중이다.

‘부모 힘으로 자녀 입시나 채용 결과가 부정하게 바뀌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유은혜 교육부 장관의 말처럼 어릴적 암기력과 비싼 학원이나 과외로 아이들을 문제 잘 푸는 기술자로 만드는 대입 제도로의 회귀 또한 용납해서는 안된다.

입시 제도 개선이 공정성 담보에 갖혀 ‘쉬운 길’로 가지 않길 바란다.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 비전과 철학에 따른 제도 보완의 길이 나오길 바라는 바다. 입시 제도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 교육 방식이 달라진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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