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발행일 2019-10-01 15:29: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그냥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한동안 국내유통산업을 석권했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인방이 올해 2분기에 나란히 적자를 냈다. 온라인쇼핑몰의 등장으로 인하여 오프라인 시장이 쪼그라든 까닭이다. 대형마트 전성기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젠 대형마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직도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할 수 없다. 약자를 보호하고 불공정을 개선하려는 의도다. 전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대형마트를 규제함으로써 전통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당초 의도한 선의가 실현되었는지는 부정적이다. 대형마트의 매출은 의도한 대로 줄어들었으나 그만큼 전통시장이 활성화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형마트가 휴업한다고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없고 소비자만 불편할 뿐이다. 영업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고 자유시장경제원리에도 어긋난다. 사업의 흥망성쇠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과 소비자가 판정한다. 전통시장은 과보호로 자생력을 잃었고 대형마트는 과잉규제로 비틀거리고 있다. 그냥 놔둬도 온라인으로 넘어갈 걸 괜히 오두방정을 떤 꼴이다. 정말 세금이 아까운 한심한 행정이다.

대형마트 규제는 기본 발상부터 잘못되었다. 기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잘되는 대형마트를 규제할 것이 아니라 침체된 전통시장을 손보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세상이 바뀌고 소비행태가 변하면 유통형태도 그에 맞춰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좌판이나 노점 중심의 전근대적인 유통형태가 전통이라는 생각도 시대착오적 편견이고, 낙후된 시장을 전통이라며 보존해야 한다는 사고도 감상적 오류다. 전통시장이 낭만적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관광객들에게 인간적인 색다른 추억을 제공해 줄 수는 있다. 그런 이유로 낙후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엔 전통시장 종사자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 기존 전통시장 정책은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를 시장에 잘못 접목한 측면이 있다.

전통시장이 유통 환경 변화에 순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정책이 유용하다. 잘 대응하고 있는 자를 잡는다고 뒤처진 자에게 그 반대급부가 돌아가진 않는다. 뛰는 자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뒤처진 자의 실력을 배양해주는 전향적인 자세로 정책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수준에 상응하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뿐 아니라 최신 경영기법과 글로벌 동향 같은 소프트웨어적 노하우를 병행·지원해야 효과적이다. 새로운 정보화 추세에 맞춰 현대적으로 변신하도록 전통시장을 지원하는 방법이 상생하는 길이다.

최근,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규제를 복합쇼핑몰로 확대하려는 반동적인 법이 여당의 발의로 국회에 계류 중이라 한다. 무단히 대형마트 발목을 잡은 것도 모자라 복합쇼핑몰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모양이다.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의도라면 이 또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정책이다. 정책실패가 뻔히 보인다. 온라인쇼핑몰이 급격히 뜨고 있다고 이를 규제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까 두렵다. 앞서 나가는 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은 변화를 거부하고 함께 주저앉자는 말과 진배없다.

불합리한 규제와 관련하여 흔히 ‘붉은깃발법’과 ‘모자법’이 인구에 회자된다. ‘붉은깃발법’은 마차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도심에서 시속 3km로 제한하고, 마차가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도록 했던 19세기 영국의 법이었다. ‘모자법’은 영국 모자 제조업자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모자 제조를 금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었다. 모자를 쓰던 영국 신사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모자를 쓰지 않자 자전거를 사는 사람들에게 모자를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정말 코미디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에서 유래한 황당한 법들이라는 점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조항도 한 통속이다.

시대착오적 사례로 교과서에 실리기 전에 대형마트 규제를 철폐하고 유통산업이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 묘책이 없으면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공정한 룰만 정해두고 나머진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에 맡겨두면 된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된 것은 초창기에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정치가 표의 사이렌에서 벗어나야 하듯이 행정은 규제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한다. 때론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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