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보다 못한 한국 정치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벤치 클리어링(Bench-Clearing Brawl)에 대해 스포츠 용어 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수끼리 싸움이 붙었을 때 양 팀 선수 모두가 나가 함께 싸우거나 싸움을 말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때 벤치나 더그아웃, 불펜에 있는 모든 선수가 나가서 벤치가 깨끗하게 비어지는(Bench-Clearing)데서 유래된 말이다. 상대와 싸우기 위해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싸움을 말리기 위해 나간다. 야구,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같은 종목에서 자주 일어난다. 단체 종목이다 보니 팀 전체의 단합과 조직력, 소속감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에서는 빈볼 시비로 벤치 클리어링이 자주 발생한다. 벤치 클리어링 상황이 발생하면 소속 선수 전원이 나가는 것이 관례다. 몸싸움이 일어난 동료의 부상을 막고 자기 팀 선수에 대한 지지와 단합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을 때 나가지 않는 선수가 있으면 구단 차원에서 벌금 등의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벤치 클리어링은 실제 집단 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도구를 잡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금지한다. 양 팀 선수들이 가벼운 몸싸움과 말싸움만 하고 그친 경우에는 게임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조국 법무장관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사생결단의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고 있다. 선수들만 나와 다투는 것이 아니라, 감독과 코치, 심지어 평소 야구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프런트 관계자들과 구단주까지 나와 싸움에 가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벤치 클리어링도 경기의 일부이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경기를 보는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각 팀 선수들이 서로 아끼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가 응원하는 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벼운 충돌과 말싸움에 그쳐야 할 다툼이 유혈이 낭자한 혈투로 발전할 때 관중들은 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고 선수들의 인격과 역량을 의심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관중들까지 그라운드로 내려와 저속한 싸움질에 가담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도 모자라 집에서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관중들까지 나오라고 한다. 심지어 청와대와 대통령까지 벤치 클리어링에 가담하여 싸움판을 키우고 있다. 양식 있는 국민들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게 나라냐’라고 한탄하며 앞날을 걱정한다.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32)는 한국시간으로 9월30일에 있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5회 말 구원 등판하여 투 아웃 후에 갑자기 포수 윌 스미스를 마운드로 불렀다. 타석에 대타로 들어선 선수는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 투수인 매디슨 범가너였다.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게 되어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커쇼가 마운드에서 스미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범가너는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유격수 코리 시거까지 마운드로 와서 대화가 길어졌다. 그 사이에 범가너는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을 바라봤다. 경기가 끝난 후 스미스는 “범가너가 기립박수 받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커쇼가 나를 불렀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그 일원이 될 수 있어 멋졌다”며 “커쇼와 범가너 사이에는 많은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전통의 라이벌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좌완 에이스로 10년 넘게 맞서 싸워온 두 선수가 라이벌에 대해 서로를 예우한 것이다. 커쇼는 “범가너가 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구단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를 기념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커쇼는 이닝을 마친 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감독에게도 모자를 벗어 인사를 했다.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광경인가.

국민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예우하는 품위, 반대 세력까지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포용력, 법과 원칙 안에서의 개혁을 갈망한다. 국민은 지금 정치라는 게임에 염증을 느껴 이 종목 자체를 없애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엄중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 이런 난장판을 벌이면서 어떻게 안팎의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