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의례 거친 권력과 선출된 권력

검사들과 자주 상대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니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것 같다. 독선과 자존감으로 뭉친 집단이 검사들이라는 인상이었다. ‘청산도 잡아넣으면 죄가 있다’는 오만, 그리고 그런 인상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브레이크 없는, 탱크 같은 집단의 코를 꿸 장사는 어디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언론이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언론을 무관의 제왕이라 하는지, 역할은 검찰권 감시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도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생존의 늪에 빠진 언론은 검찰을, 국가권력의 상징이면서 국가의 녹으로 존재하는 이율배반의 존재인 검찰을 견제할 능력이 없었다. 자정능력을 잃었으니 아예 자격 자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민들의 힘이 정부를 엎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시대를 맞아 검찰권을 제어하고 감시하는 기능도 시민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구나 싶다. 그것이 지금 검찰의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부름일 것이다.

사법시험, 개천에서 용이 나던 왕년에는 고졸자나 대학 재학 중 합격해서 가문을 빛내고 일약 스타가 된 사례가 있었다. 지금은 로스쿨로 대체됐지만 그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통과한 좁은 문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쳐다보는 것조차 아득하다. 그래서 그들은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쳤잖아. 그들끼리의 카르텔이다. 그들은 특권을 기득권이라고 하지 않고 시험을 거쳐 당당히 입성했으니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들의 법률적 권리가 특권이 되는 것은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철옹성 같은 검찰권을 깨부수고 특권의식을 없애겠다는 것이 검찰 개혁이다. 검찰 개혁 선봉에 선출된 권력이 나섰다. 그들은 말한다. 너희들 검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너무 비대해졌다. 이건 시대의 요청이지 결코 개인적 분풀이도, 시기심의 발로도 아니다. 검찰 스스로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검찰 개혁이 고시로 입성한 권력과 선출된 권력의 승부 같다.

그런데 하필 조국 장관만이 할 수 있는가. 왜 그만이 적임자인가. 그렇게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간 조국이 그 일을 맡아야 하는가. 그 전에 수많은 법무부장관도 있었고 앞으로 수많은 법무부장관 후보자들이 그 일을 맡으면 안 되는가. 사실 검찰 개혁의 법률적 사항은 국회로 넘어가 있는 것 아닌가.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 문제를 진두지휘하려면 먼저 자신을 발가벗고 가족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이 입시문제를 챙기고 아내 펀드를 챙겨야겠다면, “조국 장관은 당장 내려오시오”.

조선 성종때 젊은 유생 이목은 나라에 가뭄이 들자 “정승 윤필상을 솥에 삶아 죽이면 하늘이 감동해서 비를 내릴 것입니다”하고 상소했다. 윤필상이 길에서 이목을 만나 “젊은이는 꼭 이 늙은이의 고기맛을 봐야 하겠는가” 물었으나 이목은 외면했다고 실록은 기록했다. 이목보다 44살이나 많은 윤필상은 왕의 인척으로 여러 공을 세웠지만 시세에 부합하고 간사해서 젊은 신하들로부터 은근히 따돌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왕조시대에도 이런 직언을 했던 선비가 있었다.

1988년 12월31일, 국회 광주특위에서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 명패를 팽개친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질의에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변명조의 일장연설만 하다가 퇴장한 때문이었다. 증인의 열통 터지는 답변 태도에 그날 노무현 의원이 팽개친 것은 의원의 무력감이었다.

미안하다, 모른다. 고민하겠다. 성찰하겠다고 말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없던 일이 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 지금 조국 장관의 행태를 본다면 무엇을 집어 던졌을까. 그의 변명에 아무도 성찰할 짓을 하지 않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이 왕조시대보다, 군사독재시대보다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가 속이 좁아서일 것이다. 언론인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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