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상 백후자

인적이 드문 시골길, 아담한 오누이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래 연못엔 붉은 연꽃이, 위의 연못엔 하얀 연꽃이 환하게 반긴다. 잠시 쉬어갈 겸 연꽃의 자태를 감상한다.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저리 귀한 꽃을 피워냈다.

언덕배기로 고개를 돌린다. 검붉은 빛깔의 옹기가 수두룩하다. 경북 무형문화재 이무남 옹기장의 가마터이다. 객을 보고 먼저 내미는 손에서 단단한 굳은살과 울퉁불퉁한 손마디가 잡힌다. 황톳빛 흙이 묻은 옷과 거친 손에선 그의 삶이 만져진다. 흙을 만지며 살아온 날이 올해로 예순한 해, 그의 손끝에서 얼마나 많은 옹기가 탄생했을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사 대째 가업을 이어 옹기를 배웠다. 옹기의 생명은 흙이라는 걸 알았기에 좋은 흙을 찾으러 다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청송에서만 난다는 백, 흑, 황, 적, 청의 오색점토를 찾아 진보면 진안리에 터를 잡았다. 오색점토는 잿물을 잘 흡수하고 높은 불의 온도를 잘 받아들이며, 옹기를 몇 단씩 쌓아 올려도 견디는 힘이 좋았다.

흙은 유전자가 없고 스스로 증식하지 않는 무생물이다. 하지만 자양분이 많아서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생물들의 통로는 숨구멍을 만들고, 생물들이 먹고 내뱉은 물질은 양분이 되어 흙을 숨 쉬게 한다. 옹기장이는 그 흙을 그대로 살려 옹기 안에서 숨 쉬게 만든다. 흙이 살아 있어야 옹기가 숨을 쉰다.

흙 다음에는 물이다. 청송의 맑은 물로 반죽 농도를 맞춘 후 발로 밟아 점력을 높인다. 수없이 내리쳐서 반죽이 잘 다져지면 흙을 여러 덩어리로 떼어내 판자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원반형으로 바닥을 만든 후, 흙가래를 쌓아 올리면서 빙글빙글 그릇이 빚어지며 장인의 손이 따라간다. 물레 따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장인의 몸이 땀으로 젖는다.

다음은 바람을 부른다. 잘 빚은 그릇을 원형이 흐트러지지 않게 통풍이 잘되는 그늘로 옮긴다. 청송의 시원한 산바람이 젖은 옹기를 말린다. 그 과정에서 물은 빠져나가고 내면의 공기는 그대로 남는다. 흙 속에 들어찬 공기는 열을 가하면 점점 작아져서 숨구멍이 된다. 숨구멍은 바깥의 공기를 받아들이고 안의 공기를 밖으로 내보낸다.

잘 마른 옹기는 약토를 섞은 잿물을 입는다. 옹기장이가 큰 항아리를 양쪽에서 잡고 잿물에 담가 굴린다. 좌르르 잿물이 흘러내리고 잿빛 옹기가 얼굴을 든다. 작업이 이어지는 동안 장인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옹기 표면에 얼룩이 진다. 잿물을 곱게 바른 항아리들은 다시 부드러운 바람을 쐰다.

몸이 다 마르면 뜨거운 불기운을 맞이할 차례이다. 옹기가 줄지어 차곡차곡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 불을 붙이면 장인은 꼬박 일주일간 가마를 떠날 수 없다. 불이 너무 세서 옹기가 깨어지지 않을까. 방심한 틈에 불이 약해지지 않을까. 불의 세기를 조절하면서 가마를 지키다 보면 애타는 밤이 옹기와 함께 무르익는다. 장인이 잠을 참으며 견딘 만큼 옹기도 천이백 도가 넘는 고열을 참아낸다.

불심을 견뎌낸 옹기가 가마에서 나오는 날, 자식이 태어나던 날과 같은 심정이다. 후끈한 가마에서 아기를 받듯이 옹기를 받아낸다. 흠집이 있는지 살피고 소리는 맑은지 이리저리 두드려본다. 금이 갔거나 소리가 둔탁하면 가차 없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하나하나 선별하고 나서야 장인도 한숨 돌린다.

옹기도 자식이란다. 큰 놈, 작은 놈, 둥근 놈, 모난 놈, 하나씩 꺼내다 보면 정이 안 가는 놈이 없단다. 이번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다가도 올망졸망 입을 벌리고 있는 옹기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잊게 된단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자식이 또 있을까 싶단다.

“무엇이 전통인지 들어보세요.”

장인이 옹기를 두드린다. 옹기 가까이 귀를 대자 맑은 종소리가 들린다. 투박한 생김새에서 어찌 그런 청아한 소리가 나는지 귀를 의심한다. 직접 두드려보기도 하고, 몇 번 들어본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쏟아낸다. 그러고 보니 옹기는 종을 뒤집어 놓은 모양새이다. 하늘을 향해 울리는 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인간의 DNA 속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흙과 함께한 기억이 살아 숨 쉰다. 씨앗으로부터 뿌리를 불러내어 자신이 갖고 있는 온갖 자양분을 주며 키운다. 특히 흙을 빚어 만든 토기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흙을 하찮은 존재로 여긴다. 장독대에서 장을 발효시키고, 주방에서 음식을 담고, 식탁에서 음식문화를 빛내고 있음에도 말이다.

흙, 물, 공기, 불은 자연을 이루는 원소이다. 이는 옹기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원소이다.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완전체를 이루는데, 제5원소는 바로 장인의 혼이다. 네 원소의 결합에 장인의 혼이 들어갔을 때, 흙은 실용이 되고 예술이 되고 비로소 격조 있는 문화가 된다.

“사람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지요. 옹기도 흙으로 만들어지고 그대로 흙으로 돌아간답니다.”

옹기나 사람이나 삶이 다르지 않다며, 가마터를 바라보는 장인에게서 잘 익은 장맛이 느껴진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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