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잎사귀가 곱게 물들어 가는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가우라 꽃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발걸음 가볍게 걸어도 좋을 날들이지만, 주말마다 광장에는 목청껏 소리 높이는 인파로 가득한 요즈음이다. 태풍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우라 꽃도 속으로 외쳐대는 것 같다. “나도 여기 있다고요.” 언제 바람이 잦아들어 평화가 찾아오려나. 어서 빨리 진실이 밝혀지고 안정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모임에서 비구니 스님이 만든 영화가 화제로 올랐다. 한국의 비구니 스님이 만든 산상수훈이란 영화가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인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일을 냈다고 한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다룬 영화로 상을 탔다며 미국 LA에 사는 숙모님이 소식을 전하셨다. 영화를 만든 이는 경북 경산의 국제선원장 대해 비구니 스님이다. 그의 첫 장편 영화인 산상수훈은 8명의 신학대학원생들이 성경 구절을 소재로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믿음의 실체인 ‘진실’에 접근하고 종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사실을 전하는 작품이다.

‘산상수훈’은 8명의 신학대학원들의 문답으로 이뤄졌다. 공간도 오직 동굴 한 곳으로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단순하지 않다. 질문은 ‘정녕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최고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면 빨리 얼른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면서 왜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하느님은 인간이 따 먹을 줄 알면서 왜 선악과를 만들었는가.’,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왜 내가 죄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어떻게 해서 내 죄가 사해지는가.’ 등이다. 하나같이 기독교에서 금기시하거나, 궁금해도 물을 수조차 없던 것들이었다. 동굴 속에서 신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산상수훈의 참뜻인 인간의 본질을 다룬 영화로써 종교간 화합과 평화에 기여하여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베오그라드 국제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 수많은 영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정교회와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도 보고 “놀라운 영화”라며 경탄했다.

26살에 대구 동화사 양진암으로 출가해 평범한 승려의 길을 걷던 그는 10년 전 돌연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중국 선양에서 4년간 포교하기도 했던 그는 어떻게 진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신학도 철학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는 그가 이런 시나리오를 써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출가 뒤 보통의 스님들처럼 화두를 들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불경을 보고 자신만의 수행법을 실행했다. “나를 버리는 수행을 했다. 좋은 것도 놓고, 싫은 것도 놨다. 선악을 모두 놨다. 뒤돌아봐서도, 목적을 둬서도 안 된다니 그저 놨다.” 그렇게 해서 그는 ‘일체가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선도 악도, 부처도 중생도, 하느님과 피조물도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적 질문도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한 상태에서는 의문에 의문을 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 ‘산상수훈’, 믿음의 실체인 ‘진실’에 접근하고 종교의 본질은 하나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종교 화합과 세계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이들이 꼽는 가장 매료되었던 부분은 현상과 본질을 금 컵으로 비유해서 본질인 금과 현상인 컵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고 말한다. 금으로 만든 금 컵, 즉 금과 컵이 금 컵으로 하나라는 것, 여태까지 종교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대해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또 영화를 통해 모든 종교가 다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정말 한 쪽과 그 반대쪽의 논쟁이 아니라 더 나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끈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불교와 기독교 사상의 바다를 보는 것 같았고 각각 다른 종교들이지만 ‘우리는 더 깊은 뭔가를 가지고 있는 하나다.’는 것과 같은 근원적인 메시지를 갖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야만, 비로소 그 능력으로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본질과 현상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야 좋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스님도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랴.

스님의 영화가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했듯이 우리 세상에도 문득 산상수훈 깨달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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