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파리 반짝 빛나던 길/ 임현정

인부들이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 이삿짐을 실은 트럭을/ 통째로 훔쳐갔다는 건데// 숲 속 공터에// 책이 꽂힌 책상이며/ 손때 묻은 소파까지/ 여자가 살던 집처럼 해놓고// 남자는 너럭바위에 앉아/ 생무를 베어 먹은 것처럼/ 달지도 쓰지도 않게/ 웃었다고 합니다// 꼭 같이 사는 것처럼// 물방울무늬 원피스가/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는데/ 경비 아저씨의 푸른 모자가/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는 날이었습니다

- 시집『꼭 같이 사는 것처럼』(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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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나온 이 시의 수록 시집이 1년 뒤 반짝 화제가 된 것은 그해 방영된 ‘상속자들’이란 TV드라마의 영향이었다. 드라마 제작사와 간접광고계약을 맺은 출판사의 책들이 계속 노출되는 가운데 시집이 극중 남자 주인공의 침대 맡에 놓였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고맙다 고맙다. 나를 허락해줘서, 고맙다 고맙다 당신의 발치에서 울게 해줘서.’ 시에 대한 무한신뢰와 사랑을 보여준 이 말에 드라마 작가의 필이 꽂혔던 것 같다. 침대에 누운 남자주인공은 이 시집 제목의 ‘사’자에 작대기를 그어 ‘꼭 같이 자는 것처럼’으로 고친 다음 표지사진을 찍어 여자주인공에게 보낸다.

처음 PPL 계약을 할 때부터 책 노출 조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정하고, 책은 출판사에서 홍보하고 싶은 책과 작가가 드라마 전개상 녹이고 싶은 책을 절충해 선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대목은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의 일부 내용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무튼 한 인터넷서점에 의하면 TV 나오기 전 2주간에는 달랑 한 권 팔렸던 책이 방영 다음날 바로 60여 권의 주문이 들어왔고 이후 매일 주문량이 늘었다고 한다. 새삼 대중영상매체의 힘이 놀랍다. 하지만 시집은 다른 교양서적이나 소설에 비해 반응이 더디고 미지근한 편이다. 몇 년 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이 읽었던 책들은 모조리 대박을 쳤다.

물론 책들의 간접광고 효과는 다른 패션의류나 상품에 비하면 잽도 안 된다. 특히 책의 경우는 다른 상품과 달리 단순한 노출만으로 구매를 유도하기 어렵다. 가령 출판사가 드라마의 배경일 경우 아무런 개연성 없이 그저 책장에 꽂혀 노출된 것만으로는 약발을 받지 못한다.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해당 책을 염두에 두고 줄거리에 녹여내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얼마 전 유시민 이사장이 출연한 라디오방송을 우연히 듣다가 ‘맞아, 유시민은 작가였지’ 불현 듯 각성하였다. 스스로 밝혔듯이 그의 주요소득원은 인세이고, 직업으로서 작가의 의무를 다하고 생계를 유지하자면 일 년에 책 한권은 내야한다는 말이 꽂혔던 것이다.

현역으로서 유시민 작가만큼 간접광고에 빈번히 노출되는 사례를 드물 것이다. 방송에 나와 한마디 할 때마다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니 매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의 자유분방한 지적 행보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쓴 책을 한권도 사본 적이 없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전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이 솔직히 전부였으니 생각하면 민망한 노릇이다. 다음에 시내 나가면 서점에 들러 잊어먹지 말고 ‘글쓰기’ 책이든 최근의 ‘유럽 도시 기행’이든 꼭 한 권은 사줘야겠다. 그래야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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