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가을 햇살이 탐스럽게 빛난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단풍의 색깔처럼 고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시골집 마당에 가득 피어난 꽃처럼 공원을 수놓으며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 앞에 앉을 차례를 기다린다. 토요일을 맞아 두류공원에서 ‘대구광역시의사회와 적십자가 함께 하는 건강 상담 및 행복한 밥상‘이라는 현수막 아래 나눔 행사가 열렸다.

우리나라만큼 아픈 이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기 쉬운 나라가 어디 있으랴만, 그래도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을 위해 매년 함께 하는 나눔 의료봉사행사이다. 무더운 여름도 지나 서늘해진 가을이 다가오자 환절기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나 보다. 줄지어 선 이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외과계와 내과계로 나누어 열심히 진료해도 줄은 좀체 끝나지 않는다. 게다가 초음파 검사까지 무료로 할 수 있다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뵈니 붉게 물들어가는 잎사귀도 한결 기운이 나는 듯 살랑댄다.

보다 많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따뜻한 의료와 건강 상담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한 분 한 분 그분들의 얼굴에 웃음 꽃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오후였다. 의사회에서 마음을 담아 마련한 후원금을 전달하며 이제는 밥상을 차리는 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땀 흘리며 그분들께 밥상을 차려드리는 차례다. 의사 봉사단 조끼 위에 머리 수건과 장갑을 끼고 줄지어 늘어서서 한 가지씩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로 했다. 행복한 밥상. 식판을 들어드리고 군대에서 쓰는 숟가락에 포크가 하나로 된 수저를 드시게 하여 반찬을 하나씩 담아드린다. 힘센 남자선생님은 밥을 푸고 국을 뜨고 그중에 덜 힘들 것 같은 반찬 나누는 대열에 서있던 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무료급식행렬에 비지땀을 흘려대었다. 아마도 천 명은 족히 될 듯한 그분들의 반찬을 담아드리며 소리 내어 때로는 속으로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를 외쳐대었다.

드디어 줄이 끝 나갈 무렵 청포묵은 바닥이 보이고 맛있게 보이던 김치도 이젠 조금만 남았다. 게다가 불티나게 인기 있던 가느다란 파와 김을 무친 것은 쳐다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갈 정도로 배가 고파왔다. 드디어 배식하던 봉사자들의 식사, 시장이 반찬인지 남이 해놓은 밥이라 그런지 정말이지 세상에~! 밥이 아니라 꿀이었다. 시장기가 어느 정도 가시자 입을 모은다. 오늘 흘린 땀방울이 행복이라는 작은 씨앗에 물을 주는 것 같아 기쁘다고, 앞으로도 시간을 내서 이런 봉사를 자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야말로 나누면 더 행복해 질 수 있고 함께하여 더 의미 있는 의료봉사와 사랑의 급식이 아니겠는가. 이런 봉사활동은 참여하는 이들의 감성지수를 많이 높여줄 것도 같다. 아무리 춥고 배고픈 현실이라도 행복한 밥상 앞에서는 체온이 1도 정도는 높아질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오지 않으랴 싶다. 누구든 혼자서 식사하기 좋은 사람이 있겠는가. 더구나 독거 어르신은 식사 재료 준비와 배식, 설거지 등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 분들을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이런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는 적십자사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봉사 팀에 합류한 한 학생은 얼굴에 땀을 닦으며 이야기를 한다. “평소엔 어머니가 차려준 식사를 하다가 스스로 참여하여 준비한 식사를 어르신들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다.”라고. 그러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상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학생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온도가 1℃ 정도는 올라간 것 같다.

오래 전 방송에서 ‘행복한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매주 한가지의 먹거리를 선정하여 ‘a부터 z까지’의 모든 정보를 재미있게, 실증적으로, 경쾌하게 점검하는 프로그램이라 참으로 유익한 방송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때 얻어 들었던 지식으로 우리집 식탁을 차릴 때도 가장 행복한 밥상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곤 하였다. 신혼시절 남편에게 물었다. 가장 행복한 밥상은 뭘까? 그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이라고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한 밥상은 정말이지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이가 정성껏 마련하여 차려주는 것 아니겠는가.

김수환 추기경은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가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려니’라고 하셨다. 추기경님의 미소와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이들이 많아져서 곳곳에서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한 밥상을 차리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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