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거짓말, 헛말

발행일 2019-10-21 15:28:4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막말, 거짓말, 헛말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 때는 ‘생각과 말’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실은 한때가 아니라 인류 역사 대부분이 그랬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죄목은 청년들의 영혼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2천 400년쯤 전의 일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800년쯤 지나 415년의 일이었다. 학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뛰어난 수학자가 있었다. 철학자기도 했던 그녀의 이름은 히파티아였다. 강의하러 가는 길에 갑자기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사상의 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였다.

다시 1천100년쯤 지나서였다. 1534년, 헨리 8세 때의 영국이었다. ‘유토피아’를 쓴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참수형에 처해졌다. 대법관이라는 최고위직까지 올랐던 귀족이었다. 왕의 이혼을 반대해서였다.

근대사회를 연 위대한 사상가들도 위태롭긴 마찬가지였다. 마키아벨리, 장 자크 루소, 볼테르도 책이 불태워지거나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생각과 글이 불온하다는 이유였다.

20세기 들어와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끔찍한 학살과 공포가 세상을 휩쓸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뚱과 크메르 루즈 등에 의한 대학살과 대숙청은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짓게 만든 대표적인 비극이었다. 선진국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미국의 매카시즘과 베트남 침공,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 등도 부끄러운 야만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70여년 전만 해도 사상이 다르다고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독재권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거나 갇히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죽임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도 납치되어 살해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을 정도였다. 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 언론 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거나 투옥되거나 해직된 언론인도 부지기수였다.

불과 수년 전, 지난 정권 때의 일이었다.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문화예술인들이 불이익을 받았다. 소위 블랙리스트 사건이었다.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최근까지도 사치였던 것이다.

미국 헌법을 기초했고 3대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우리가 지금 생각이나 말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살게 된 것도 전적으로 국내외의 선배 세대가 흘린 피와 노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피로 키운 그 고귀한 민주주의’가 만신창이가 되는 상황을 하루도 빠짐없이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이성적 토론이 자리해야 할 ‘생각과 말의 자유 공간’을 온갖 막말과 거짓말과 헛말들이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흉측한 막말’이다. ‘다이너마이트 청와대 폭파’ 발언은 듣는 귀를 의심하게 했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가리켜 ‘조폭들의 모임’이라고 한 것도 그랬다. 너무 많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대부분이 유력 정치인의 말들이다. 국회 회의장에서까지 막말을 넘어 욕지거리와 삿대질이 일상이 되었다.

‘뻔한 거짓말’도 심각하다. 거짓말 잘하는 것이 마치 정치인의 자질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최근에는 유명대학의 교수들까지 가세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가리켜 ‘매춘부’라고 했다. ‘학문의 자유’ 뒤에 숨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일부 유튜브들은 물론 유력 신문과 방송들까지 교묘한 거짓말과 가짜뉴스들을 만들거나 퍼나르고 있다.

또 있다. ‘황당한 헛말’이다. 이익이 된다 싶으면 논리나 근거도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주사파가 장악한 청와대’, ‘사회주의 정권’, ‘빨갱이’ 같은 흑색선전과 선동이 대표적이다. 전광훈 목사의 주장 하나도 듣기 거북한 헛 말이었다. ‘나는 본회퍼를 따른다.’ 본회퍼가 누구인가? 히틀러 암살모의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사형당한 목사가 아닌가? 전형적인 혹세무민 헛 말이다. 당혹스럽고 참담하다.

유명 무명의 선각자들이 그 모진 고문과 투옥까지 감당하면서 피땀 흘려온 역사가 저런 막말, 거짓말, 헛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탐욕의 정치인과 무책임한 언론인, 혹세무민하는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아무 말이나 해도 되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도 아니다.

‘생각과 말의 자유 공간’을 깨끗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품격을 지켜내는 것이 시대의 과제가 되었다. 결국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아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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