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이 엄마/ 윤제림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 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 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뿐이 아니다/ 보아라, 저/ 갑수네, 병섭이네, 상규네, 병호네,// 재춘이 엄마가 저 간월암 같은 절에 가서/ 기왓장에 이름을 쓸 때/ 생각나는 이름이 재춘이 밖에 없어서/ '김재춘'이라고만 써놓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재춘이 엄마만 그러는게 아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상규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재춘아. 공부 잘해라!

- 시집『그는 걸어서 왔다』(문학동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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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당신이 행복입니다’란 SK그룹의 기업이미지 광고가 있었다. 그 광고의 ‘엄마편’에는 재춘이네가 나오고 이 시가 소개되었다. 광고 멘트는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그게 엄마 행복인 게다…” 이 광고는 ‘2009년 올해의 좋은 광고상’에 선정되었다. 한적한 항구마을 바닷가 조개구이 집, 아들의 이름을 걸고 장사하는 어머니의 밝은 얼굴이 시청자와 신문독자로 하여금 아릿한 감동을 자아냈고 참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우리 둘레의 수많은 ‘재춘이 엄마’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재춘이네 구이집이 실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다만 이 시를 쓴 윤제림 시인은 윤준호라는 본명으로 활동하는 광고카피라이터였기에 아마 그 연줄로 시가 차용되었으리라 막연히 짐작될 뿐이다. 과거 여성들은 시집가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 이름을 붙여 택호로 불리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의 엄마로 불리었다. 그 자식들이 한 집안의 대표브랜드란 인식이 부지불식간에 통했기 때문이리라. 특히 자식 이름을 앞장세워 아무개네로 불리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미화시킨 면도 있는데, 지금의 관점으로는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못한 그 전통이 고루하고 못마땅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 사랑의 농도야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겠으나, 자기 이름 대신 누구네 엄마로 자꾸 불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식이 전부라는 인식도 함께 배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을 여권회복이란 명분을 내세워 가차 없이 폐기해야 옳은지는 아리송하고 여전히 의문이다. 이 시는 그 의문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답하고 있다. 누구 엄마로 불리는 걸 아무런 저항 없이 수용하여 자식의 이름으로 사는 게 엄마의 행복이라고 증거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자식에게 넉넉히 포시라운 환경을 만들어주거나 크게 뒤를 봐줄 수도 없다. 물론 스펙을 쌓는데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공부 잘해라!’ 그 말이 전부다.

내 어머니 김정순 여사도 ‘순진이 엄마’란 발음이 어색해 자주 불리지 않아 그렇지 평생을 그리 사셨다. 어쩌다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당신 이름으로 서명할 때도 있긴 있었겠으나 어머니 이름이 주어가 된 적은 별로 없다. 여권을 발급받아 몇 번 바깥나들이 하실 때도 겉으로는 썩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쩌다가 통지표에 ‘수’를 몇 개 받아왔을 때, 역력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도 좋았다. 실은 ‘순진아, 공부 잘해라!’ 소리를 별로 들은 기억이 없다. 어머니의 기대가 그리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삶의 전반을 통해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다. 순진이 엄마 미안해요 미안해요!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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