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권상연



회화나무 세 그루가 호위병처럼 삼강주막을 지키고 섰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일까. 영화 속 좀비에 감염된 듯 줄기의 한쪽 면이 회색 시멘트로 채워져 있다. 주인 없는 주막을 지키느라 무척 힘들었나 보다. 못난 흉터를 가리고 싶었는지 잔가지들이 피워 올린 무성한 잎들이 시멘트 부분을 덮고 장승처럼 서 있다.

삼강은 세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을 일컫는다. 문경에서 흘러오는 금천과 예천에서 넘어오는 내성천이 큰 물줄기인 낙동강과 만나 더 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예천과 문경의 경계가 되는 삼강의 교통수단은 나룻배 하나뿐이었다.

예천의 삼강 나루터에는 숙소가 있었다. 노를 젓는 사공의 집과 주모의 집이 분리되어 있었고 과거 길에 오르던 선비와 대구에서 한양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보부상이 강을 건너기 전에 머물렀던 객사였다.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불어나는 철이나 폭설로 배가 강물을 건너지 못할 때는 몇 날이고 숙박을 했었다. 삼강주막은 나루터에 발이 묶인 이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해 주고 술을 대접해 주었다.

마지막 주모인 유옥련 할머니가 살아 계실 당시만 해도 잔치국수며 파전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친정 나들이를 왔던 언니는 삼강주막에 들러 속상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예천에 있는 언니의 산소를 찾을 때마다 삼강주막에 들르는 것은 나와 동생들만을 위해 언니가 유일하게 내어준 시간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층층시하 시집살이라고 했던가. 언니는 홀시어머니뿐 아니라 시할머니에 시누이, 시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살았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뒷바라지하기에도 바빴던 언니에게 나이 어린 동생들과 육 남매의 맏이 자리는 힘에 겨웠으리라. 그런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방학만 되면 언니네 집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농사일로 바빴던 언니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삼강주막에 들러 잔치국수며 어묵을 사주곤 했다. 조카들을 두고 우리만 데리고 간 까닭이 시댁의 눈치를 피하면서 한 입이라도 덜려는 언니만의 방편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주막이 문을 열었다. 사공과 보부상들이 머물렀던 객사와 선비들이 기거했던 행랑채를 새로 지어 손님을 맞는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도로며 건물들이 옛 주인이 가고 새 주인이 들어왔음을 말해주는 듯 어수선하다. 마지막 주모가 돌아가신 후 명맥만을 유지해 오던 주막만이 홀로 외떨어진 채 세월의 흔적을 더해간다. 친정엄마의 부엌처럼 친근했던 가마솥이 검게 그을린 아궁이에 얹혀 잠을 잔다. 훌쩍 뛰어넘은 세월에도 깨지 않고 시끄러워도 눈을 뜨지 않는다. 부뚜막에 세워놓은 부지깽이처럼 그림 속 정물이 된다.

주막에 이르자 형부는 말이 없다. 예천에서 농사를 짓던 형부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문경으로 이사했다. 언니는 다섯 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살 만하다 싶을 때 난소암에 걸렸다. 나날이 발전하는 현대 의학도 언니의 몸 속 암세포의 전이를 늦추지 못했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언니가 저세상으로 간 지도 이태를 넘겼다.

새롭게 단장한 행랑채에 든다. 방 안에는 4인용 평상 하나가 손님을 맞는다. 예전 보부상들이 머물렀던 숙소처럼 꾸몄다는데 누워보니 조금 넉넉하다. 벽이며 천장이 온통 빛바랜 한지 일색이다. 앞서 다녀간 이들이 남긴 낙서가 벽의 풍광을 더한다.

네 개의 목책만을 세우고 이엉을 엮어 얹은 초가가 손님을 맞는다. 사방으로 트인 넉넉한 마루가 마음에 드는지 형부는 다른 곳은 보지도 않고 자리를 펴서 눕는다. 무더운 여름 날씨가 어지간히도 형부를 지치게 했나 보다. 일흔 줄의 형부가 둑 너머로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든다. 형부의 얇은 셔츠에도 푸른 강물이 굽이쳐 흐른다. 가늘게 흐르던 물줄기가 큰 바위를 만나 물이랑을 일으키며 굽이치는가 싶더니 하얗게 부서져 부풀어 올라 강의 폭을 넓힌다.

삼강주막은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한단다. 찾아오는 손님에 비해 일손이 부족한지 여기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배달한다. 평상에 자리 잡은 식구들을 위해 나는 치마끈을 동여맨다. 누런 주전자와 표주박 모양의 막걸리 잔을 챙기고 금방 구워낸 파전을 납작한 쟁반에 담아낸다. 잔치국수를 주문하는 조카의 짓궂은 음성을 맞받아치는 나는 이미 주막의 하루 주모가 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던 술잔이 뜸해진다. 노년의 형부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린다. 길다면 길었던 언니의 투병 생활이 지긋지긋할 법도 하건만 조금 더 애쓰지 못한 자신을 질책한다. 참고 참았던 울분의 둑이 터지더니 급물살을 탄다. 쭈글쭈글한 눈가의 주름을 따라 흐르던 물방울이 순식간에 얼굴을 잠식한다. 마룻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남자의 우는 모습은 망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건만 측은한 마음에 눈을 돌릴 수도 없다. 지켜보던 조카들의 소맷부리마저 빗물에 젖는다.

마당 한쪽에 원뿔형의 대나무 움집이 있다.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드니 밖이 훤히 내다보여 민망하기 짝이 없다. 옛날 변소란다. 급한 용무를 달래는 것처럼 비를 쫄딱 맞고 쭈그리고 앉은 형부의 모습은 그 옛날 봇짐을 등에 진 초조한 보부상의 모습이다. 어서 비가 그쳐야 할 터인데 하면서도 움막의 짚 대롱을 길 삼아 흐르는 물방울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짚 대롱마다 물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작은 내를 이룬다. 애초에 삼강의 물줄기도 저 물방울처럼 작은 꿈을 꾸고 있지 않았을까.

주막은 하룻밤 묵어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먼 길을 가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형부의 푸른 옷자락이 초가집 툇마루에 걸려 펄럭인다. 언니와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는 듯 메마른 형부의 눈빛이 고요하다. 주막에 드는 빗소리가 삼강의 물소리에 묻혀 형부의 강 속으로 파고든다. 언니를 떠나보낸 형부의 삶이 새로운 강으로 유입된다. 이별을 위한 전주곡이 울리듯 초가로 이은 지붕마다 여름비가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내 가슴에 흐르는 작은 개울도 빗물에 젖어든다.

빗줄기가 거세진다. 메마른 모래를 적시듯 빗물은 나무의 껍질이 낸 길을 따라 흘러내린다. 껍질이 진액으로 먹을 가는지, 물 먹은 나무의 결마다 수묵의 빛이 번져간다. 한 폭의 수묵화가 물 먹어 찢어진 걸까. 껍데기가 벌어진 줄기를 따라 차디찬 철대가 단단히 붙잡았다. 어떤 태풍이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을 굵직하고도 튼튼한 다리다. 이제 혼자서 흘러가야 할 형부에게도 저런 버팀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나무가 주인처럼 서 있는 낮은 담장을 따라 사람들이 주막으로 든다. 빗물에 젖은 열기를 쫓기 위해 댓잎이 삼강에서 바람을 불러들인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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