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반

옥동서원…청렴하기에 가난했던 재상 참된 정치인의 표상을 만나다

<19> 옥동서원

강현국(시인·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옥동서원(사적 제532호)은 1518년 조선조 중종 13년에 건립된 사액(賜額) 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방촌 황희(1363∼1452) 정승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황희의 영정과 함께 황맹헌, 황효헌의 위패도 배향돼 있다.

호국의 명산 백화산 자락, 상주시 모동면 옥동서원을 찾은 날은 때마침 가을 향사를 올리는 날이었다. 옥색 도포로 의관을 정제한 유림들이 황희 정승에게 향을 사르고 무릎을 꿇어 잔을 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제의의 모습이었다.

장독대에 맑은 물을 떠놓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새벽이 떠올랐다. 정성을 들인다는 것, 정(精)과 성(誠)을 다한다는 것은 관계의 지극함을 이해하는 의지이다. 제의는 삶을 지극하게 하고 저승과 이승, 망자와 산자, 과거와 현재의 교감을 가능하게 한다.

망자를 추모하는 제의의 참뜻은 무엇일까?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일, 뿌리의 기억을 더듬어 그리운 마음을 일깨우는 일, 그분의 후손 됨을 감사하는 일, 다시 만날 그날까지 편안한 영면을 기원하는 일….

그렇다면 망자를 추모하는 제의의 참뜻은 무엇이어야 할까? 망자를 모셔오는 일, 망자를 만나는 일, 망자와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일, 망자의 정신을 길이길이 계승하는 일….

그러므로 유림들의 향사는 황희 정승의 혼령을 모셔오는 의식이고 옥동서원은 황희 정승의 삶의 발자취를 만나 교감하는 신성한 공간이어야 했다. 600년 전 황희 정승을 뵙고 싶었다.

◆청백리 표상 황희 정승

황희 정승은 여말선초의 이름난 충신, 대표적인 청백리의 표상이었다. 농사개량에 유의해 곡식 종자를 배급하고, 뽕나무를 많이 심어 의생활을 풍족하게 했다. 국방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북방 야인과 남방 왜구에 대한 방비책을 강구했다.

천첩 소생의 천역(賤役)을 면제하는 등 인권에도 유의했다. 4군 6진의 개척,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진흥 등에 앞장섰다. 요즘 말로 바꾸자면 경제, 안보, 인권, 외교, 문화 등 어느 하나 소홀한 것 없이 챙긴 멀티 지도자였다.

이른바 조국사태로 조국의 앞날이 캄캄한지 오래인 터에 어찌 황희 정승의 리더십이 그립지 않겠는가. 마지막 읍(揖)을 마친 유림들이 제주(祭酒) 상에 둘러앉아 환담을 하는 동안 서원 경내를 천천히 걸었다.

경덕사, 5칸의 강당, 문루, 전사청, 제물을 마련하는 고사, 관리인이 거주하는 화직사, 묘직사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멀리 금강이 흐르는 산 끝에 유생들이 시를 읊던 팔각정이 자리 잡고 있다.

향사 때 유생들의 거처 및 행사 장소로 사용된 문루는 2층 형식이다.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회보문(懷寶門), 위층 남쪽은 진밀료(縝密寮), 북쪽은 윤택료(潤澤寮), 중간의 마루는 청월루(淸越樓)라 현액돼 있다. 특이한 건물구조이다.

17~8세기 서원 건축에서 나타나는 강학 쇠퇴와 향사 강화의 배치구도와 특징이 잘 남아 있어 건축사적 의미도 크다고 전한다. 옥동서원은 ‘갈천문집’, ‘방촌선생문집’ 등 총 5종 241책의 책 판을 비롯해 각종 고문서 300여 권, 현판 11개 등의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높은 서원이다.

건물의 외양은 세월에 빛바래어 소슬했으나 서원 곳곳에서 황희 정승의 두고 간 발자취, 삶의 체취가 짙게 느껴졌다. 황희 정승의 삶의 일화가 담겨 있는 ‘두문불출’과 계란 속에 뼈가 있다는 뜻을 가진 ‘계란유골’이란 말이 떠올랐다.

◆‘두문불출’과 ‘계란유골’

위화도 회군 후 이성계가 정권을 잡고 왕이 되자 고려의 신하들은 조정을 떠났다. 그 중 개성의 두문동에 72명의 신하가 숨어들어 아무리 설득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두문동에 불을 질러 신하들을 나오게 하려 했지만 모두 나오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문 닫아걸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두문불출(杜門不出)’은 이렇게 태어난다. 황희 정승 또한 두문동에 들었던 선비 중의 한 사람,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삶의 의지가 그 말 속에 녹아 있다.

청렴하기로 이름난 재상 황희는 집이 가난해 먹을 것이 없었다. 안타깝게 여긴 세종이 “오늘 하루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모두 황희 대감께 드리라”고 명한다. 그날 하루 종일 큰 비가 내려 통행하는 물품이 아무것도 없었다. 저녁 무렵 겨우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왔지만 그나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계란유골’의 탄생 배경이다. 청빈한 삶의 극단을 보여준 일화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한글날, 조국 사태가 촉발시킨 민심의 분노가 광화문을 뒤덮고 있다.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정신이 없겠다. 두문불출, 계란유골처럼 ‘조국사태’란 말도 어느 날 국어사전에 실릴지 모르겠다. ‘조국에 의해 조국이 어지럽게 된 사건을 이르는 말’이라고 흑백사진 같은 뜻풀이를 할 것이다. 앞의 조국은 고유명사이고 뒤의 조국은 보통명사라고 보조설명도 곁들일지 모르겠다.

600년 전 황희 정승의 일화가 ‘두문불출’과 ‘계란유골’의 뜻풀이를 도와주듯 600년 후 후손들이 ‘조국사태’라는 말의 생성 배경에 대한 백(back) 브리핑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공지능에게 의뢰하면 되리라. ‘내로남불’과 ‘후안무치’를 주제어로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되리라. 인공지능은 무사 공평할 테니까. “나르시시즘적 성격장애를 가진 자(집단)의 수오지심(羞惡之心) 마비에서 비롯된 자기성찰의 결여로 말미암은 사건”이라는 심층 분석까지 기대해도 좋으리라. 황희 정승에게 가르침을 구한다면 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봄날이었어, 두문동 부근 논둑길을 걷고 있을 때의 일이었지. 늙은 농부가 검은 소와 누런 소 두 마리를 몰아 밭을 갈고 있었어. 두 마리 소 중에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 농부에게 다가가 물었지. 농부는 갑자기 나를 데리고 멀리 밭 가에 서 있는 나무 밑으로 갔어.

“검은 소는 꾀를 부리지만 누런 소는 일을 잘하지요” 라고 조그만 소리로 속삭이는 것이었어. “아니, 하찮은 소에 대해 물어보는데 여기까지 와서 귀에 대고 말할 필요가 무엇이오?” 의아해서 되물었지.

“글을 배운 선비라는 자가 무슨 그런 말을 하시오, 아무리 소같이 하찮은 동물이라도 자신에게 나쁜 말을 하면 싫어하는 법이오.”

농부의 책망에 얼굴이 화끈거렸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하자 소도 농부도 오간 데 없었어. 농부의 가르침을 하늘의 뜻으로 알고 불언장단(不言長短) 말조심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았지. 세치 혀를 조심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남의 잘잘못을 향해 함부로 쏘아붙인 말은 독 묻은 화살로 되돌아 와 제 심장에 꽂히기 일쑤임을 명심해야 해. 내가 욕먹지 않는 재상으로 사초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언행을 신중히 하라는 늙은 농부의 가르침 덕분이었어.”

시월의 산골 저녁 답은 깊고 스산했다. 말이란 무엇인가. ‘소주/쏘주/쐬주’에서 보듯 말이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그 말이 통용되는 사회와 그 말이 생성된 시대의 민 낯이다.

인터넷을 떠도는 독화살 댓글들을 보라. 흉흉한 세태의 민 낯임이 분명하다. 서원 관리인으로부터 주안상을 대접받았다. 문화재청이 공모한 ‘2015년 살아 숨 쉬는 서원 활용화 사업’에 선정됐다고 했다.

소학강좌, 붓글씨 쓰기, 부채 만들기, 선비 복장하고 제향 체험하기, 방촌 선생이야기를 소재로 한 북 아트와 마당놀이, 땅 따먹기, 비석 치기, 천 년 옛길 걷기, 백화산 포도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흔히 그러했던 것처럼 옥동서원 활성화 사업도 의욕만 앞세우다 유야무야 되는 일이 돼 버릴까 걱정이었다. 말뜻 그대로 활성화 사업이 되려면 옥동서원만의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고,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선택과 집중이 전제돼야 한다.

묵언수행 프로그램은 어떨까? 2박3일 동안, 그것이 어려우면 하루 동안만이라도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황희 정승의 600년 전 그날, 두문동 논둑길을 산책하는 체험을 해보면 어떨까. 역사의 가르침 어느 한 구절만이라도 뼛속 깊이 새기는 묵언수행 프로그램, 멋지지 않겠는가! 황희 정승의 어록을 서원 곳곳에 거울처럼 걸어두고 말이다.

나라의 근본은 오직 백성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惟邦本本固邦寧)

백성에게 믿음을 잃고서 능히 그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없다.(未有失信於民而能治其國者也)

사람들이 분노하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고,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면 재변이 따른다.(人旣痛憤天必厭之天必厭之則災變隨之矣)

강현국(시인·사단법인 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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