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선 권옥희



가을날처럼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솜사탕처럼 떠 있는 날씨는 여행하기에 아주 좋았다. 나비 한 마리 앉히려고 있는 대로 잎을 펼쳐 멀대처럼 키를 키우는 접시꽃이 한창인 것을 보니 곧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다. 장마 오기 전에 고향을 안동에 둔 사람들의 모임인 영영회에서 내 고향 안동이자 남 선배의 고향인 오지 중의 오지, 도산의 가송리를 찾았다. 지금이야 차들이 수시로 다니고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몇십 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닐 땐 하도 가난해서 꿀밤을 점심 도시락으로 싸갔다가 꿀밤돼지라고 놀림도 엄청나게 받았다고 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지금도 도토리묵을 안 드셨다.

정신문화의 수도 하면 안동. 그 정신문화의 수도 중심지이자 시발지가 안동시 도산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비의 문화가 그대로 살아 있는 도산서원이 있고 농암종택이 있는 그 도산면 중에서도 가장 오지(奧地)에 속한다는 가송리는 퇴계선생이 지나다가 도산구곡에 늘어선 소나무가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해서 가송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졌다. 어디든 걷고 걷는 물길과 산길이 절대적인 곳. 때 묻지 않게 숨겨두고 싶은 곳. 선배가 설 명절이라고 고향 찾았다가 늦은 밤 버스는 끊기고 안동역에서부터 걸어서 얼음이 쩌렁쩌렁 우는 물길 따라 어둠을 헤치며 가송리 집에 갈 때는 등골을 잡아당기는 무서움에 추운 줄도 몰랐다고 했다. 건지산 중턱 외딴집의 흐릿한 불빛 보고 찾아들었다가 집주인장의 호의로 얌전한 처자가 차려주는 밥 한 그릇 달게 얻어먹고 비로소 집으로 갈 수 있었다던 선배는 그 후 첫사랑이 된 그 처자를 마음에 묻고 산다고 했다.

우린 첫사랑 같은 그 아름다운 가송리에서 훌륭하신 선현들의 얼을 되새기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다. 선배의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펜션에 짐을 풀고 바로 옆의 농암종택으로 들어갔다. 당대를 휘어잡으며 떠날 줄을 아는 뒷모습이 아름답던 선비는 가고 없어도 그가 남긴 집은 65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을 누대에 걸쳐 새로운 주인이 바뀌면서 집을 잘 지켜온 덕에 오늘날 우리 앞에 집은 이런 거다! 하며 보여 주고 있다. 몇 번을 봐도 그대로 훔쳐 가고 싶은 긍구당. 금침이 깔려 있어 신혼 첫날밤을 치르면 딱 좋을 것 같은 그 방 툇마루에 앉아 맞은편의 강각을 바라보니 대청 위에 놓인 의자 두 개가 참 평화롭게 보였다. 저 의자에 앉아 가송리를 휘돌아 나가는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소나무에 둘러싸인 적벽인 백련암을 바라보면 그야말로 신선이 아니겠는가?

건지산에 올라 학이 머물던 자리 학소대를 보고 가려고 도란도란 걸으며 오디도 따먹고 산딸기도 따먹으면서 오지체험 하는 재미가 막 들 무렵 청량산 너머로 밀려오는 검은 구름을 예감은 했었다. 이글거리던 태양이 여우비로 바뀌더니 순식간에 소나기를 퍼붓고 비에 젖어 초라해진 모습들을 영화의 한 장면인 양 서로 바라보며 웃느라 정신없을 때 어찌 알고 선배의 동생이 트럭을 몰고 산길을 올라왔다. 일부는 안에 타고 일부는 짐칸에 올라타서 밀림 같은 숲길을 헤치며 덜컹덜컹 올미재 산봉우리를 휘딱 넘을 땐 쓰고 있던 우산도 찌그러져 버리고 오금이 저려 비명이 절로 솟았다. 그런데 이런, 펜션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해가 났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낙동강 물길을 잠시나마 잡아 가두는 난간 없는 다리를 건너 퇴계의 문하생인 성성재금난수 선생의 고산정으로 갔다. 다리를 건너기 전 깎아지른 적벽 밑에서 물수제비뜨기가 한판 벌어졌다. 손을 튕겨져 나간 돌이 통통통 튀며 우리보다 먼저 고산정 기슭까지 닿는다. 숱한 세월 흘러도 변함없이 흐르는 낙동강의 유유함을 바라보며 산자락 밑에 까만 점 하나처럼 들어앉아 있는 이 정자에서 시를 읊고 학문을 논했을 당시 선비들의 절개를 닮은 듯 고산정을 지키는 앞뜨락의 소나무 한 그루가 청청하다.

비 오는 밤을 보낸 가송은 새벽 물안개가 피어올라 마을도 종택도 고산정도 안개 속에 가두었다. 햇살이 안개 속에서 피어나며 세상을 드러냈을 때 세상 조용한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흐르는 것은 물과 바람.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오늘은 고산정 뒷길로 맹개마을까지 트레킹을 간다. 정글의 법칙처럼 오지가 따로 없다. 온갖 야생화와 새소리의 환영을 받으며 나뭇잎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빨갛게 유혹하는 산딸기로 새콤달콤하게 입맛을 다시는 재미가 그대로 웃음이다. 축축한 이끼에 미끄러질까 봐 발목에 힘을 주며 걸어가는 산길은 그냥 밀림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이어지고 마치 협곡을 지나듯 절벽 바위 밑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기도 했다. 강물을 만났다가 다시 밀어내기도 하면서 힘들다고 하기보다는 사람 손을 타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자연과의 만남과 교감이 신비로웠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은 저 산봉우리에 놓인 하늘다리가 아련히 보였다. 신비의 명산인 청량산을 위쪽에 두고 도산구곡으로 이어지는 가송리의 이웃마을인 쏘두들과 가사리와 우리가 소나기와 싸우느라 오줌 지리며 넘어왔던 올미재, 그리고 주변의 한 번쯤은 찾아봐야 할 단천리와 백운지와 왕모산 맹개마을의 메밀밭과 공룡 발자국, 월명당과 백련암 장구목과 학소대 모두 오염되지 않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천혜의 보고였다. 농암종택까지 강물을 건너오려고 바지까지 걷어 올렸다가 돌멩이들이 미끄러워서 바퀴 큰 트랙터를 불러 타고 건넜다. 생전 체험해보지 못한 트랙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재미가 남달랐다. 강 건너 저 산비탈에 내 첫사랑 청자 씨가 살던 집터가 보인다면서 남 선배가 손끝을 가리켰다.

유난히도 옛 선조들의 발자취가 많이 서린 곳. 퇴계가 걷던 길을 따라가 보면 숙연함과 초연함을 넘어 그리움과 낭만에 젖는 아련함마저 느껴진다. 남 선배가 아니었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와보고 경험하지 못했을 오지체험이 가슴에만 담아두기에는 너무 벅차다. 늘 시간에 쫓겨 바삐 사는 내게 첫사랑 같은 그곳 가송리 추억은 오래도록 꺼내 봐도 그 새로움이 더해질 것 같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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