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엽서 / 김경미

단 두 번쯤이었던가, 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년 혹은 이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중략)/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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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연이란 더구나 남녀 사이의 그것이란 참 오묘하여 알다가도 모를 우연의 실타래이며 난해한 퍼즐이다. 날 알지 못하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게 될 수도, 내가 모르는 그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할지도, 그녀의 미소가 나를 향한 게 아니듯, 내가 베푼 친절이 그녀에게만 착각일지도. 그리고 그녀는 기억조차 못하는 순간이 내게는 영원일 수도, 내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가 그녀에겐 긴 추억의 끄나풀이 될지도 모르는 일. 당신은 잠시 스쳐 가지만 내겐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

그녀는 나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남자사람친구’라 여겨도 내게는 그 이상일 수도, 그녀가 나를 사랑이라 불렀어도 내 심장이 전혀 쿵쾅거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때로 지독히 일방적인 불공정거래이며, 그래서 우리는 더러 착각하고 허우적거리며 이기적이 된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초지일관 사랑은 오직 하나라고 믿는 순진한 남자도 있다. 상상과 환상의 영역을 맴돌다가 사라져간 사랑도 있다. 그곳에선 사랑이 생산되지 않으니 유통도 없고 그러니 소비도 없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이란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 자신의 자아를 꾸준히 확대해가려는 의지이다. 그 과정에 한 대상이 실제든 가상이든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경우든 깊게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 내게도 늘 용기가 필요했으나 발휘하진 못했다. ‘불쌍한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고 ‘밥을 우물대’거나 어쩌면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 사랑은 자주 엇박자여서 온도에도 차이가 있고 시간차도 생기는 법.

차라리 온전한 미수에 그쳤던 사랑이 나을 수도 있겠다. ‘상처의 불안도 없이’ 그 사람과 함께 갔던 관광지를 다시 찾아 기념품점에서 우연히 풍경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남아있지 않은 자신이 문득 놀라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에 대한 엽서크기만큼의 추억이 살짝 부풀었다가 다시 구겨진다 해도 그리 섭섭지는 않으리. 내게도 ‘나 몰래 나를 꺼내보고는 하는 사람이 혹 있을까’ 엽서가 도착할 즈음이면 아주 멀리 있을 거라는 그 마지막 엽서가 대문 안쪽에서 뒹굴던 날, 대굴대굴 낙엽이 굴렀던가. 짙게 단풍이 물들어갔던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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